위대(胃大)한 박통~! 그런데 기념관은 언제 지어지니?
소한이 애비다~! |
2005-11-20 07:48:39
너희들이 위대하는건 위대(偉大)한게 아니라 위대(胃大)한 박통이 아니니?
뭘 그렇게 존나게 쳐먹고 胃大 해졌는 아니?
이 세사 종교중 가장 쓰레기 같은 종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사람의 피로 제사를 지내는 원시 종교만도 못한게 박통교 또라이 들이다.
국보나 여기서 설치는 박통교 신자들 보면 그 중독성은 뇌 활동에 이미 적신호가 온것 같다...
박정희는 구악을 일소한다는 명분 아래 직업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정지시키고서는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지하에서 민주공화당을 만들고 대통령 할 준비를 착착 진행시켰다. 군사반란 직후부터 정치자금 조달 때문에 생긴 4대 의혹사건이 세상을 소란하게 했다.
'건전한 증권시장 육성'이라는 명분 마래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빼돌린 증권파동, 미군 달러를 번다는 명분 아래 벌인 워커힐 사건, 새나라 자동차 사건, 빠찡꼬 사건으로 쫓겨날 위기에 봉착한 박정희는 조직 폭력배 하는 것처럼 부하 측근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교도소로 보냄으로써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 외에도 반란 초기에 말을 잘 안 듣는 기업인을 잡아들여 전두환 모양으로 아예 재산을 강탈해 버렸다. 박정희 집권기간 내내 엄청난 특혜사건과 비리가 꼬리를 물었다. 그 이유는 막대한 금액의 정치자금 조달 때뿐이었고 원흉은 박정희였다.
서을 지하철처럼 새차 값을 내고 헌차 가져오는 일은 다반사였고. 돈벌이에는 육영수가 나서서 서을 중심가 고속버스니 커피회사 등 수십 개의 기업을 운영했다 치부의 소문을 가리기 위해 장학재단이니 육영재단도 만들고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은퇴를 위해 영남대학도 만들었다.
박정희는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만들고 배분했다. 국무총리 품위유지비로 월 천만원씩 받았다는 게 정일권의 증언이다 이런 품위유지비는 한국의 모든 고급공무원, 단체장, 문화인, 심지어는 야당인사들까지 받았다 60년대 중반 천만 원이면 지금 돈으로 수십억원이니 그 관리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월남전 사상자 보상금 12억 불의 행방은 알 길이 없고 스위스은행에 예치된 60억 불이 넘는다는 돈의 행방도 알 길이 없다. 죽은 다음에 청와대에서 나온 천문학적 고액권도 행방을 알 길이 없다.
요즘은 박정희 시대에 비하면 정말 깨끗한 편이다. 그때는 공공 국유재산 전부가 아예 박정희 것이다시피 했고 박정희 허가 없는 사업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인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박정희가 그렇게 엄격하게 단속했지만 이후락이 나 박종규니 그 측근들이 돈 관리에서 떨어지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았다. 떡고물이라는 말은 그때 생겼다. 누군가가 이후락의 축재를 비판하자 "떡을 만지는데 떡고물은 자연히 떨어진다"고 대답했다. 대통령의 자금을 만지는 데 잔돈푼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 떡고물 수준이 그때 돈으로 400억이니 600억이니 했다 면 떡은 얼마나 컸겠는가?
박정희를 청렴결백의 표상처럼 떠벌여대는 작태가 얼마나 가소롭고 한심스런 작태인지 지나버린 25년 세월이 무심할 뿐이다. 그 세월에 썩어빠진 개꼬리가 황모로 둔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또라이 박통교 아그들아 박통 기념관은 언제 만들어지니??
정수 팔아서 지을래 아니며누 니네 재산 털어서 만들래?
ㅎㅎㅎ
난 또 나가 봐야 되니까 담에 보자... 박통교 또라이 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