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낙하산병이 몇 명이나 있었나?
건필 |
2005-08-13 02:14:52
상공업 개조-자본가계급 제거
또 하나의 소멸해야 할 계급은 도시와 농촌의 민족자본가 계급이었다.
상공업 개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은 이렇게 말했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
즉 하나는 착취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비착취 및 반착취 계급이다.
자본가계급의 착취는 타고난 것이라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추기 때문에
제거할 수 밖에 없으며 개조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자본가 및 상인에 대한 개조는
그 강도가 더욱 심해서 ‘살인’과 ‘세뇌’를 병용했다.
원칙은 여전히 순종하면 살려주되 반항하면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만약 재산을 바치고 아울러 공산당을 옹호한다고 표시하면
이것은 인민내부의 모순이 된다.
당신이 만약 반감을 갖거나 불평을 한다면
즉각 반혁명으로 취급하여 타도의 대상이 된다.
피비린내 나는 탄압 속에서 자본가, 상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몽땅 바쳐야 했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욕을 참지 못하고 자살했다.
당시 상하이시 시장 천이(陳毅)는 매일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오늘은 또 낙하산병이 몇 명이나 있었나?”
이 말은 얼마나 많은 자본가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는지 물은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공산당은 아주 짧은 기간에 사유재산제도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토지 개혁과 상공업을 개조하는 동시에
공산당은 진반(鎭反), 사상개조, 가오강(高崗)과 라오수스(饒漱石) 반동집단 타도,
후펑(胡風) 반혁명집단 조사, 3반(三反), 5반(五反), 숙반(肅反) 등
일련의 전국적인 정풍(整風)운동을 개시했다.
이 모든 운동에서 공산당은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정부기구와
당 위원회, 당 총지부, 당 지부를 모두 동원하고
공산당원이 세 사람만 되면 하나의 전투 보루를 만들어
농촌과 도심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이리하여 공산당은 없는 곳이 없고 관계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되었다.
항일전쟁 시기부터 계속해 온 당 지부 건설과
이를 통한 네트워크식 통제구조는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정치운동에도 이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국민을 탄압하는데 줄곧 관건적인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9평 세번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