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사태
신문기사 |
2005-07-28 04:54:55
1989년 6월 4일, 중국정부가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일어난 유혈참극 '천안문사태'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4월 15일 호요방 前당총서기가 사망하자 그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집회를 갖기 시작했고, 일반 시민도 여기에 가세하면서 집회는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했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천안문에서는 지식인, 노동자, 일반시민 등 100만여명이 연일 모여들어 민주화를 요구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온건파인 조자양 총서기, 호계립 정치국 상무위원 측과 강경파인 양상곤 국가주석, 이붕 총리 측이 대립했으나, 강경파가 득세하자 계엄군이 이날 새벽 천안문광장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던 학생,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군의 발포로 수천명이 희생됐다.
이후 중국은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상층부 권력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 조자양을 실각시키고, 강택민을 당 총서기로 선출, 새 실권자로 등장시켰다. 실권자 등소평은 가을 4중전운에서 당중앙군사위 주석직 등 모든 공직에서의 사퇴를 발표했다.
등소평의 대표적인 실책
개혁성향의 조자양일파를 숙청한 것, 이당시 조자양의 손을 들어줬다면
공산당의 힘은 약화될지라도 건전한 발전을 할 수가 있었음.
대학생들의 실책
공산당에 대한 믿음보다는 정치성을 띄고, 양상곤, 이붕, 강택민을 타도했어야 함.
어중간한 태도가 아니라 조자양에 대한 지지를 확실히 보여주어야 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