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ㅋㅋㅋ  |   2005-07-28 01:05:10
◇ 킬링필드( Killing Field )의 현장 우리는 캄보디아를 방문하게 되면 불과 20년 전의 생생한 현장을 방문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지금 언급하고있는 킬링필드의 현장이고. 또 한곳은 뚜올 슬랭 심문센터이다 프놈펜 관광의 스타트는 뚜올 슬랭(Tuol Slang)박물관으로 부터 시작한다. (추천장소) 뚜올 슬랭( Tuol Sleng )심문센터는 프놈펜 시내에 고등학교 건물을 개조하여 심문실, 고문실, 유치실로 만들어 혁명 정권의 악명 높은 숙청의 산실로 이용 되었다. 이 센터는 직원이 1백 여명이나 되었는데, 타자수, 사서, 사진사, 전기기사, 대필사, 전직교사, 심문관 등으로 구성되어 혁명 정부의 충직한 집행자로 활약 하였다. 심문관 들은 대체로 교육을 받지 않은 어린 농부로 전투요원으로 맹위를 떨쳤던 혁명군의 첨병 들이었다. 이들의 나이는 12세~16세로 사람들을 죽인다는 행위 자체를 나쁜 것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잔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 지도부에 충성하는 것으로 인식 하고 있었다. 이곳에 가면 이들의 일부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일부지만 여자 대원도 눈에 들어온다. 가슴에 번호표를 단 사진을 찍는 등 기록을 남긴 다음 살해하는 것을 보면 크메르루즈군들은 죄책감은 커녕 오히려 나름대로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1975년 이곳은 원래 고등학교였지만 킬링필드의 주역 '폴포트'가 형무소로 개조한후 s-21로 불리면서 17,000명의 인원을 수용했었다고 한다. 1979년 베트남군이 이곳을 점령했을때 이곳에는 단지 7명만이 생존해 있었다고 -. (그들은 폴포트동상 건립을 위해서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이 죽인 사람들을 수용했던 고등학교 건물을 가보았다 입장료 2불내고 들어가니 고문기구와 수천 명의 사망자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 캄보디아 지도를 해골로 만들어 붙여 놓았다 복수를 우려한 폴포트는 그 가족과 친척까지 전부 학살했기 때문에 아기와 어린아이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끝없는 사진들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얼굴들!! 한마디로 끔찍하다. 캄보디아인뿐만 아니라 미처 탈출하지 못한 서방기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물론 그들도 예외없이 학살당했다. -.-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것은 학살된 유해의 해골로 캄보디아지도를 만들어 놓았는데 뭐라 설명할수 없는 독특한 기분이 든다. 무서운것도 아니고 놀라운것도 아니고. ...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솔직히 그당시 캄보디아에 태어나지 않은걸 감사했다. 이곳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귀신 소동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귀신이 나타났다는 신문 기사가 나기도 한다고 한다. 킬링필드는 두얼슬랭에서 죽은 사람들이 묻히는 곳이다. 킬링필드 현장은 프놈펜에서 약20km 떨어져 있으며, 가는 도중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유해들이 발굴된 구덩이 10여개, 그 유해들을 모신탑 등.. 그 당시의 생생한 현장들이 눈에 보인다. 원래 과수원땅이었는데 개발도중 시체가 발견되어 발굴된 죽음의 땅이었다. 줄맞추어 묻힌것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묻히었기 때문에 삭막하기 그지없다. 가로 세로 3미터 정도 되는 구덩이.. 높이는 1.5미터 정도 되는데 그 구덩이 안에 많은것은 200구 정도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덩이와 구덩이 사이에 사람이 다닐 수 있게끔 되어있는데 거기에는 당시에 사람들이 입었던 옷가지와 뼈가 다 썩지않아서 나불거리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나면 정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앙에는 해골탑이 있는데 1층2층 층계로 되어 있어서 그곳에 해골들이 놓여있고 맨 밑 칸에는 옷가지들이  쌓여 있다. 정말 처참하다. 킬링필드 현장은 프놈펜의 형무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이곳에 옮겨와 처형한 곳인데 총알을 아끼려고 생매장, 죽창등 갖은 만행을 저지르며 학살을 했다고 한다. 부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사격연습용 표적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할말이없다.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 질수 있는걸까? 역사의 현장에 도착하면 그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위해 위령탑이 세워져 있는데 탑 내부에는 해골과 그 당시에 입었던 옷 가지 등의 유품들이 전시 되어있고, 주변을 둘러 보면 발굴 당시의 사진들과 발굴로 파헤쳐진 수 십 개의 웅덩이와 잔악한 현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 나무들은 관광객들의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을 살펴보면 주민들의 도주를 막기위해 철조망을 치고 그 밑으로 많은 양의 지뢰를 매설하여 이들의 도주를 이중 삼중 차단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탈주 행위가 여러번 있었으나 거의 실패로 돌아가고 그 중 한명이 탈주하여 그 간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외국 기자에게 소상이 알리어 캄보디아의 잔혹 행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진술에 의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킬링필드" 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게 했다. 여기에서 약 30만의 사람들이 처형 되었으며, 이곳 말고도 캄보디아 전역에 수 곳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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