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없던데 고양이는
ㅋㅋㅋ |
2005-07-26 13:10:09
“Na는 낭만 고양이”… 신세대 싱글족, 고양이에 빠지다
[주간조선 2005-07-26 09:50]
“꼬리치며 아부하는 개는 비굴해”“우아하고 도도한 고양이가 짱”애묘문화 ‘야옹’
“고양이를 2년째 키우고 있다. 도도하고 튕기는 듯한 태도가 맘에 든다. 강아지는 시도때도 없이 달라붙지만 고양이는 그러지 않아서 좋다.”(전나영·22)
“고양이는 너무 예쁘다.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 귀족적이다. 가끔 날 무시해서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귀엽다.”(김진섭·27·회사원)
“맹목적으로 따르는 개보다 은근히 다가오는 고양이가 매력적이다. 밤늦게 집에 오면 골골 소리를 내며 반겨준다. 더구나 고양이는 공부하는 동안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 방해하지 않는다.”(이은희·안일여종고 3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고양이 기르기’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고양이는 ‘밤거리의 요물’ ‘음흉한 도둑’으로 천대 받아왔으나 자유롭고 개인적 성향이 강한 20~30대 도시남녀와 10대 학생층에서 ‘고양이는 맘껏 놀고 실컷 자며 진정한 삶을 즐길 줄 아는 유쾌한 친구’의 이미지로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 애묘(愛猫)인구는 15만~20만명. 80%가 30대 이하로, 그 중 20대가 60%를 차지한다. 또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애묘인들에 따르면 “90%가 미혼 독신자”라고 한다. 같은 애완동물이지만 개는 일가족이 함께 키우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고양이는 싱글족이 주로 키운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한국고양이협회(Corea Cat Club) 김춘섭 사무국장은 “속박을 싫어하고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비슷한 성격을 지닌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며 “특히 혼자 사는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애묘문화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고 했다.
왜 도시의 젊은이와 싱글족에게 고양이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 샴고양이 4마리와 살고 있는 드라마작가 한경필(37)씨는 “삶의 가치관이 ‘느리게 살기’ ‘즐기면서 살기’로 바뀌면서 고양이를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게으르고 말 안듣는 고양이의 속성이 애묘가에겐 오히려 매력 포인트다. “특히 당당하고 쿨한 성격의 Na세대는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고양이한테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낍니다. 꼬리 치고 설설 기는 개는 왠지 비굴하게 보이는 거죠.” 한씨는 애묘인 중에 고양이와 닮은 성격이 많다고 한다. 기성세대에 대한 냉소적 반항, 주관이 뚜렷하고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 “개와 사람이 명령을 주고 받는 수직적 주종관계라면 고양이와 사람은 수평적 동반자 관계라고 할까요? 애묘인에 미혼여성이 특히 많은 것도 고양이에게서 반려자의 느낌을 갖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개와 같은 충성심이나 유용함은 없지만 그 야생의 도도함과 기발한 매력으로 삶에 열정을 줍니다.”
고양이 애호가는 부르지 않는데도 달려와서 치대고, 졸졸 따라다니다 발에 밟혀 비명을 지르는 강아지에 짜증을 낸다. 심지어 현관을 열자마자 반갑다고 오줌까지 지리는 꼴이란…. 그에 비해 고양이는 얼마나 우아한가. 사뿐사뿐 걸어와 살짝 몸을 비비는 스킨십을 남기고는 조용히 창가로 돌아가 사색에 잠긴다.
애견시장은 정체, 애묘시장은 확산
애묘인구가 늘면서 애묘용품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료수입회사인 두원실업 뉴트로초이스의 전영진 과장은 “2002년 한 해에 고양이 사료는 무려 543%의 판매 증가율을 보였다. 2003년에 156%, 2004년에 79%로 증가율이 주춤거리긴 하지만 2004년 초부터 경기침체로 개 사료의 판매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주목할 만한 신장세”라고 했다.
1997년에 비로소 고양이 사료가 등장했을 만큼 한국의 애묘문화 수입은 늦었지만 ‘펫트레이드’ ‘캣타운’ 등 애묘용품 온라인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고양이 전문병원 ‘닥터캣’의 김용섭 원장은 “아직은 애견용품 시장의 5%밖에 안 되지만 개 쪽이 정체돼 있는 반면 고양이 쪽은 매년 20~30%씩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카페 ‘괴수고양이’ 운영자 최교순(25·여)씨는 “새끼고양이 입양을 희망하는 중·고생이 많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어 분양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부모의 반대로 못기르지만 2~3년 후면 고양이를 사서 기를 잠재적 애묘인구가 상당하다는 말이다.
서구에서는 고양이 기르기가 보편화해 있다. 호주에선 총 가구의 33%, 미국에선 30%가 고양이를 기른다. 캐나다와 벨기에(29%), 프랑스와 스위스(27%)도 대표적인 애묘국가. 이웃나라 일본도 전통적인 고양이 왕국이다. ‘동물이나 사물에도 인간과 동등한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의 나라 일본에서는 고양이가 신성시된다. 고양이신(神)을 모신 신사가 있고 집마다 돈을 가져다준다는 ‘복고양이인형(마네키네코)’이 있다. 개와 고양이를 기르는 비율은 거의 50:50. ‘이웃집 토토로’ ‘묘한 고양이 쿠로’ ‘왓츠 마이클’ 등 고양이를 의인화한 인기만화가 넘쳐난다. 일본 디자이너 산리오가 개발한 고양이 캐릭터 ‘헬로키티’는 미키마우스에 필적하는 히트상품이 되었다.
한국에서 유독 고양이가 천시돼온 이유는 “유교적 전통 때문일 것”이라고 에세이집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의 저자 박사(여·36)씨는 말한다. 충성의 덕목을 갖춘 개는 유교사회의 인정을 받았지만 고양이는 배은망덕한 놈으로 치부됐다는 것. 사실 개는 사람이 택해서 길렀지만 고양이는 사람을(정확히는 그 사람이 사는 집을) 택해서 살았다. 헛간에, 부엌에, 광에 살던 고양이는 제가 좋아 거기 둥지를 튼 것이지 “너 여기서 쥐 잡아”란 사람의 명령에 따랐던 것은 아니다.
감성적인 예술가 타입 많아
아직도 한국에서 고양이와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 애묘인은 ‘이웃의 편견으로부터 내 고양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강아지가 버려지면 ‘가여운 유기견’이지만 고양이가 버려지면 도둑고양이로 취급받는다. “애 낳고 나면 고양이는 내보내라”는 시어머니, ‘고양이 추방안’을 고려 중인 동네 반상회,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거나 단지 울음소리가 기분 나쁘다는 집주인으로부터 소중한 반려자를 지켜야 한다. 최근에는 뇌와 중추신경에 염증을 일으키는 ‘톡소플라즈마 곤디’라는 기생충을 고양이가 옮긴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애묘가들은 “날고기에서 감염되는 톡소플라즈마증은 사료만 먹는 애완 고양이와 무관하고 더구나 배설물 접촉을 통해 감염되므로 그 확률은 미미하다”고 반박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탐미적이고 감성적인 기질이 있다고 한다. 박사씨는 “예술가는 대체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반면 정치가나 군인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에드거 앨런 포, 베토벤, T.S. 엘리어트, 헤밍웨이가 대표적인 애묘가였다면(엘리어트의 소설 ‘극장고양이, 거스’는 뮤지컬 ‘캐츠’로 다시 태어났고 헤밍웨이는 함께 산 34마리의 고양이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겼다) 나폴레옹, 히틀러, 아이젠하워는 심한 고양이 혐오증을 보였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링컨, 디어도어 루스벨트, 무솔리니는 소문난 애묘가였다. 어쨌든 사람과 부대끼는 공동체적 생활보다 느리고 명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타입이 애묘인 중에 많은 것은 사실이다.
타인을 위해 유용한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는 고양이, 일생의 3분의 2를 잠자기로보내는 고양이는 일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치명적인 유혹이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양치기 고양이라든지, 사냥 고양이, 장님 길잡이 고양이, 썰매 끄는 고양이도 없다. 고양이는 명예를 걸고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독립성향이 강한 신세대와, 탐미적인 여성과, 직장이란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작가, 디자이너, 예술가 사이에서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싫증나지 않는 애완동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허만갑 주간조선 기자(mghuh@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