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이젠 군수기술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
Sopranos |
2005-07-15 00:57:44
수출에서 활로 찾는 방산(防産), 지난해 처음으로 4억달러 돌파
탄약, 부품류 등 값싼 제품에서 자주포, 함정, 훈련기 등 고가 하이테크로
“비행 조종 특성이 뛰어납니다. 고등훈련기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지난 1월 5일 오전 경남 사천 공군 제3훈련비행단 임무통제실. 이한호 공군참모총장이 다소 가쁜 숨을 내쉬며 하는 말이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 총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시제기(試製機)에 직접 탑승, 조종해본 소감을 말했다.
시제기는 개발을 위해 제작한 시험용 항공기. 안전상 문제 때문에 군 수뇌부가 직접 조종하는 일은 거의 없다. 국내에서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이 총장이 극히 이례적으로 T-50을 조종한 것은 외면적으로는 오는 9월부터 T-50이 양산돼 공군에 납품되기 때문에 사전에 직접 시험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출을 겨냥, 해외 고객에게 ‘최고 공군총수인 내가 품질을 보증하는 항공기’라며 세일즈의 의미도 컸다.
이로부터 26일 뒤인 1월 31일 4박5일간 한국을 방문한 칼리드 아랍에미리트(UAE) 공군사령관에게 전례 없는 ‘초특급 대우’가 이뤄졌다. 칼리드 사령관의 계급은 소장. 하지만 방한기간 중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김종환 합참의장, 이한호 공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는 물론 이해찬 국무총리와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인사들을 줄줄이 만났다. 칼리드 사령관에겐 보국훈장 통일장도 서훈됐다.
이처럼 우리 정부와 군 고위인사들이 ‘UAE 공군사령관 모시기’에 나선 것은 UAE가 국산 첫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의 유력한 고객이기 때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측은 UAE에 최대 60대(20억달러) 규모의 T-50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되면 우리 방산 수출사상 최대규모가 된다. KAI는 이밖에 터키, 이스라엘, 그리스, 폴란드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벌여왔다.
최고 군수뇌부 나서 직접 세일즈
T-50은 1997년부터 KAI와 미 록히드마틴사가 디지털 비행제어 시스템 등 최첨단 항공공학 및 전자기술을 활용해 공동 개발했다. 경공격기 A-50은 물론 각종 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F-50)로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지금까지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한 국가는 세계에서 12개국에 달하지만 T-50은 최고속도 마하 1.5를 기록, 훈련기 중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최고 수준의 항공기로 평가받고 있다. KAI 측은 2030년대까지 총 800대 이상(300억달러 규모)의 해외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무기 등 우리나라의 방산장비 수출액은 4억1760만달러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4억달러를 넘어섰다. 전년도인 2003년도의 2억4061만달러에 비해 2배 가까이, 방산 수출을 시작한 1975년의 47만달러에 비해 30년 만에 무려 100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수출된 방산물자(장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탄약(32.7%). 이어 기동(23.5%), 함정(20.1%), 총포(12.3%), 용역(5.1%), 일반물자(2.9%), 통신(2.3%), 항공(0.9%)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우리가 수출한 전투복 등이 널리 사용됐으나 전체 방산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탄약 등의 수출 비중이 높고 항공 등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장비의 비중이 낮은 것은 수출구조상 개선할 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주력 수출 품목이 점차 탄약, 부품류 등 값싼 단순 제품에서 자주포와 함정, 훈련기 등 고가(高價)의 하이 테크 무기로 바뀌는, 고무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2001년부터 터키에 현지 조립생산 방식으로 수출되고 있는 K-9 자주포 계약 규모는 10억달러(300여문)에 달한다. 단일 품목으로는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규모다. 사정거리 40여㎞로 세계에서 독일의 Pzh-2000 정도만이 K-9의 라이벌로 평가될 정도로 세계 정상급이다. 미국의 M-109A6 ‘팔라딘’과 영국의 AS-90 자주포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1999년 6월 연평해전이 벌어진 뒤 북한의 보복에 대비하기 위해 백령도와 연평도 등에 수문의 자주포를 긴급 배치하기도 했다. 가격 경쟁력도 높아 스페인,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포 구경은 155㎜로, 전투중량 47t, 전장 12m, 전폭 3.5m이다. 승무원 5명에 최고속력 시속 60㎞, 주행거리 360㎞다.
이밖에 크루즈(순항) 미사일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사정거리 150여㎞의 함대함(艦對艦)미사일, KT-1 기본훈련기, 무인항공기(UAV), 휴대용 대공미사일, 어뢰, 최신형 전자전(電子戰) 장비, 사정거리 180㎞ 이상의 지대지(地對地) 미사일, K-200장갑차 등도 우리 기술로 개발됐다. 이 중 KT-1 훈련기와 K-200 장갑차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각각 수출됐다.
무기수출의 39.2%가 아시아 지역
2001년엔 대우조선해양이 방글라데시에 2300t급 프리깃함을 수출, 우리 방산 수출사에 새 장을 열었다. 종전에 군수지원함, 전차상륙함 등을 뉴질랜드, 베네수엘라 등에 수출한 적이 있으나 이같은 대형 전투함을 수출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 프리깃함의 건조비용은 1억달러. ‘방가반두’라는 이름이 붙은 이 함정은 전장 103.7m, 폭 12.5m로 구경 76㎜ 주포와 함대함 미사일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는 한국 해군이 보유한 초계함 및 호위함보다 큰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주요 수출대상 국가는 아시아에 많이 몰려 있다. 1985~2002년 방산수출의 39.2%가 아시아 지역이었고 유럽(19.5%), 북미(19.1%), 중남미(10.2%), 중동(8.4%), 아프리카(3.6%)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터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방글라데시 등이 주요 수출 대상국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에 대한 수출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이들 국가로부터 무기수입에 대한 반대 급부로 받은 절충교역(옵셋)에 따른 것이 많았다.
현재 방산 수출액이 연간 방산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내외. 군수산업의 선진국이 대부분 20% 이상의 수출비중을 보이는 것에 비춰볼 때 내수 의존도가 아직 매우 높다. 1999년 SIPRI(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추산한 세계 무기 10대 생산국 중 우리나라는 헌법에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방산수출 비중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SIPRI가 작성한 1997~2001년 세계 주요 재래식 무기 수출입 통계를 보면 우리 방산 수출실적은 22위인 반면 수입은 7위다.
전문가들은 우리 방산이 50%대에 불과한 낮은 가동률과 이에 따른 붕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수출만이 ‘활로(活路)’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출이 좀더 활성화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고정비 부담이 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고정비 부담이 큰 이유는 전시 생산 및 운영유지 품목 생산에 필요한 필수 인력 및 설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한남성·이호석 박사가 월간 ‘국방과 기술’ 2004년 4월호에 기고한 ‘방산물자 수출 증진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제도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설비투자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설비투자 효율의 경우도 방산업체가 일반 제조업체에 비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6~2000년 일반 제조업의 경우 설비투자 효율이 59%인 반면 방산 부문은 27%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보유하고 있는 설비에 비해 매출액이 매우 낮다는 의미다. 방산업체의 설비부담이 커 생산 물량이 부족할 경우 설비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도 있다.
2020년까지 412개 첨단 기술 확보 방침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제한된 내수 물량에만 의존하지 말고 수출 증대를 추구해야 하는데 원가(原價) 계산상의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방산물자 원가계산 제도상 전용설비 감가상각비는 수출물자 원가계산에서 제외해 주고 있으나 이는 총 원가의 3% 미만이어서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또 ▶정부 차원의 수출 지원조직 미흡 ▶제품개발 초기 시장 창출을 위한 마케팅 전략 부재 ▶방산수출시장 조사 기능 미약 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으로 꼽히는 이스라엘은 국방부 내에서 ‘시바트(SIBAT)’라 불리는 수출 전담기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수출 경쟁력 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토대는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국방과학기술이다. 국방부는 2010년까지 첨단무기체계 연구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개발, 기술 선진권에 진입하고, 2011~2020년에는 첨단화·정밀화하고 있는 미래 무기체계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국방연구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방과학기술은 선진국의 70% 수준. 전차·자주포 등 지상장비는 89% 수준으로 선진국에 근접했지만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술 등 신특수 분야는 54%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방부는 2020년까지 스텔스, 소형 위성, 미국의 토마호크 미사일과 비슷한 크루즈 미사일 등 총 412개의 첨단 기술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의 실현을 위해선 연구개발비 대폭 증액이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국방비 중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5%(2003년 기준)로,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12~14%(2001년 기준)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15년까지 국방비 중 연구개발비 비중을 10%대로 높이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