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조선족과 한국인
갤러거 |
2005-07-12 07:58:29
인터넷에서 볼만한글을 봐서 여기다 퍼서 올립니다..
재일동포와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중국조선족과 한국인으로 단어를 바꿔도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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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정말로 재일동포입니까?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편견과 차별은 점차 완화되고 있다.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대학 교원이 되는 사람도 드물지 않고 재일동포와 일본인이 함께 한국어를 배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재일동포 주부가 일본인 주부에게 김치 담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고, 재일동포와 일본인이 아주 자연스럽게 친구로 사귀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은 재일동포 스스로의 노력과 그들과 공생하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재일동포 문제가 재일동포의 문제라기보다 일본 사회와 일본인 자체의 문제란 인식이 확실히 확산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재일동포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인터넷 게시판 등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들의 글을 발견 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글을 읽었을 때 그 필자의 잘못된 인식이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의 너무나 빈약한 정신세계에 우울해지고 연민의 정을 느낀다.
기억 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내가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배웠을 때 어떤 일본인 학생이 “저는 편견을 가진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일본계 미국인 학생을 만났을 때 이렇게 일본어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사람이네……”
나는 그때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이상한 사람은 자넨데……
생김새는 우리 일본인과 똑같지만 일본어를 못하고 영어만 말하는 그 일본계 미국인 학생을 봤을 때 그 일본인 학생은 그때까지 자기가 접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속마음을 말해버린 것이다. 나는 별로 잘난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비교적 선입견 없이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 내가 호기심이 강하고 자기가 모르는 것이나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아주 강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편견의 원천은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상상력의 부족에 있는 것 같다. 미지의 사항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도 있다. 고백하지만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 경우 그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강하기 때문에 어떤 사항이든 일단 잘 보고 나서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은 어떤 사항이든 이것은 이상하다, 그것은 안 된다라고 속단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처음엔 이상하다고 느껴진 것도 자세히 보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느낌이 달리질 때가 적잖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것은 남의 말만 듣고 속단하는 것이다.
나는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편견은 그런 어리석은 속단 때문에 계승되어왔다고 생각한다. 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약 25년 전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같은 중학교에 다녔던 친구들 중 몇 명은 오사카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 학교 근처에 재일동포들의 민족학교가 있는데 거기 학생들은 우리 학생들을 잡으러 가끔 온다고. 정말 무섭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장면을 본 것도 아니고 그냥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그 무서운 소문을 들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때 “그것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 라고 말했지만 적어도 그 친구 머릿속에는 재일동포 = 폭력적이란 편견의 등식이 어느 정도 새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편견이 확산되었을 상태에서 재일동포 학생과 일본인 학생간에 마찰이 생기면 ‘역시 재일동포들은 폭력적이다’ 라고 그 편견은 증명되어버리는 것이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또 있다. 내가 일본에서의 회사원 시절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부장에게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자네는 한국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난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아. 내가 옛날에 사업을 했을 때 재일동포한테 사기를 당했거든.’’
재일동포 2세 작가인 정인화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택시 기사한테서 들었다고 한다. 정씨가 한국에 취재로 갔다 온 길에서 그를 태운 택시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요, 한국 사람을 아주 좋아해요. 같은 민족끼리 전쟁했는데도 열심히 노력해서 경제력을 길렀죠. 존경스럽죠. 하지만 재일동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싫거든요.’’
정씨가 이유를 물자 그 운전기사는 전에 자기가 사업을 했을 때 재일동포한테 어음 문제로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재일동포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노골적으로 표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도 재일동포를 싫어하는 그 기사는 정씨가 재일동포란 사실을 모른 채 “손님도 긴 여행을 하셔서 피곤하시죠.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부터 다시 힘내십시오” 라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고 정씨 집에 도착했을 때 짐을 움직이는 것을 자발적으로 도와줬다고 한다.
만약 그 기사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이 일본인이었다면 그 기사는 “저는 일본인을 싫어합니다. “왠지 싫거든요” 라고 말했을까?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를 속인 사람은 많은 일본인들 중 일부 사람이었지 전체 일본인들이 다 사기꾼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택시기사도 내 옛날 상사도 자기를 속인 사람이 우연히 재일동포였다는 것만으로 재일동포 전체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편견 바이러스’ 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퍼져나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편견은 그렇게 발생하고 확산되는 것이다.
약20년 전의 이야기지만 내가 아는 한 재일동포 선배가 교육실습으로 오사카의 한 중학교에서 몇 주를 보냈을 때의 이야기다. 1주일 정도 지난 후 한 학생이 그 선배한테 물어봤다고 한다.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로 재일동포입니까?”
그렇다고 대답한 선배에게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아마 그 학생은 그때까지 머릿속에서 왜곡된 재일동포 이미지를 그려 왔었던 것 같다. 그것은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고 아마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소문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런 왜곡된 재일동포 중 이미지와 실제로 만나본 재일동포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이처럼 어리석은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그 학생은 그 후 내 선배한테 배우면서 어떤 것을 느꼈을까? 재일동포 중에도 일본인 중에도 다양한 사람이 있어서 속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지금 우리를 가르쳐주는 재일동포 선생님은 재일동포 중 예외적인 사람이라고 계속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그 성실한 선배로부터 배우면서 대부분 학생들은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교육실습은 학생들에게 아주 값진 수업이었을 것이다.
재일동포와 일본인은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분명 한 것은 그 공통점만을 강조해서 재일동포도 일본인도 다 똑같다라고 오해하고 동화시키려고 하는 것도, 차이점만을 부각시켜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과 같이 못 산다라고 배척하는 것도 둘 다 아주 어리석은 직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본 일본 잡지에 한 재일동포 기자가 쓴 칼럼이 있었다. 그 기자는 취재하러 들어간 어느 한국 음식점에서 그 집 단골손님인 일본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재일동포도 일본인도 상관이 없죠. 다 똑같죠?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기자는 그 손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전혀 다르죠. 왜냐하면 저는 분명한 재일동포이니까요.”
아마 그 일본인 손님은 같다는 것은 좋은 것이고 다르다는 것은 잘못된 것, 즉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재일동포 기자의 반론은 그런 착각을 틀리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다르다는 것이 틀리 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식사할 때 숟가락과 젓가락을 쓰는 사람도 있고 젓가락만 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김씨나 이씨란 성씨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야마다나 타나카란 성씨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불교식으로 제사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런 차이점에 대해 인식하고 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상하다라고 판단하기보다 각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오히려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편견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런 다양성의 즐거움을 후세대에게 가르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즐거움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우리 중년세대가 젊은 세대에 줄 수 있는 큰 선물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다.
출처 : 한국인 조센징 조선족 (저자 : 카세타니 토모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