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편한 시각>때문에 연변이 가난하게 사는지도 모른다.

갤러리  |   2005-07-07 16:06:05
연변은 백두산이란 천혜의 조건과 풍부한 지하자원, 수림자원, 지리적 우세(북한, 중국동북부, 소련 등 3국접경지대)를 소유한 지역이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들이 항상 연변을 들먹이기 때문에, 중국정부차원에서  연변의 경제를 대대적으로 부흥시키고자 아니한다. 즉 민감한 역사적 문제가 있는 연변자체에 경제적우세를 발휘시킬 경우 연변의 일부 조선족들은 목소리가 높아질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국이  간도니 뭐니  들먹이지 않는다면 중국정부차원에서 연변걍제발전문제에 대하여 민감하게  대처할 일이 없겠다. 오히려 <소수민족정책>이라는 홍보차원에서 연변을 엄청 발전시킬것이다. 한국에서 항상 중국의 자유화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중국이 <러시아식 분열>을 맞으면 그 이점-즉 간도와 고구려의 영광-그 땅을 회복하지 않을가 하는 계산이 분명히 깔려있을 것이다. 백두산-수림인행도로를 따라 가느라면 소나무 숲 곳곳에, 간간히 <여기는 워낙 우리땅>, <**을 회복하자>등등 나무에 칼로 아로새긴 글귀들, 즉 중국정부차원을 경계시키는 문구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한국인들이 연변에 대한 불편한 시각(중국정부차원에서)과 아울러 중국정부는 연변지방의 경제와 발전을 충분히 실현하고자 아니 한다. 연변에 훈춘이란 곳이 있다. 소위 금삼각지(경제요충지)라고 표현한 구역이다. 북한 러시아 중국 등 3국의 접경지대이기 때문이다. 이 훈춘 삼각지대-지리적 조건을 충분히 이용한다면 굳이 대련만이 동북의 무역항이 아닐것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한국<국수주의>와의 불편한 문제때문에 연변을 충분한 발전시키길 주저한다. 몇년전 한국에서 연변으로 직속 항공권운항-연길공항이 개통되었지만 연길공항은 연변지방에서 관리 못하게 법적으로 되어있는바, 길림성정부에서 연변공항을 관리한다. 뭐 이야기하느라면 한두가지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문제의 밑바탕에는, 본원적으로 보면 한국이 연변인들의 충분한 발전권의 저애조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연변인의 각도로 볼때) 한국과 수교가 이루어지기전 그러니깐 60-80년대에는 중국정부차원에서 연변에 항상 중앙인원들을 파견하여 경제건설을 충실히 하도록 하였고 그 결과를 중국 중요기관지 및 신문 언론매체에 활자화하였고 아울러 연변인들은 자부심도 꽤 컸었으리라 생각한다. 한중수교는 역사의 필연이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들의 <이웃영토에 대한 갈망>이 연변인의 경제적 발전에 저애라는 것은 알아야 한다. 사실 연변인들이 한국에 많이 다녀갔지만 한국의 경제적 발전에 대한 감탄은 있었겠지만 한국인과 굉장한 괴리감을 느꼇고 그 괴리감 속에는 자존심을 짓밟히는 대가가 얼마나 깔려있겠는가? 그런 각도로 볼 때 연변인들은 한국에 대하여 충실히 고국이라고 느끼기 힘들며 자기가 나서자란 중국을 분명히 조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점들에 대하여 한국인들은 불쾌하게 생각하는데 입장바꿔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갈것이다. 그런 연변인들의 언행에 대하여 떼늠이 되었다느니 혹은 중공의 뭐라느니 하는 것은 오히려 연변인들의 역반심리만 조성시킬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은 1949년 이후에 영토가 확장되어  다민족과 어울려 사는 그런 형국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기원전 1600년전부터 역사가 문자화된 하조시대부터, 서주, 춘추전국시대 및 진조, 한조, ...등등의 아득한 조대를 거치면서 각 민족들이 서로 충돌과정중에서 하나로 어울려서 살게 되었다. 특히 공자의 <화>사상을 보면 이질적인 서로 상충되는 요소들이 하나로 어울리는 인간세상을 제일 근원적인 문제로 론하였다. 여러가지 민족이 대륙에서 충동하고 어울리면서 살아온 역사는 곧 중국의 역사이다. 4-5세기에 흉노족, 강족, 서족, 갈족, 선비족 등 민족들이 중원지역을 대량 침입하였고 이런 민족들은 이후 각 믹족들로 더 세분화되었거나 이화되었고, 아울러 한족들과 어울려서 살았고 대륙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였다. 이런 민족의 이동과 화합의 역사는 일일히 서술할수 없을 정도이며, 이런 화합의 역사가 공자가 말하는 화사상이기도 하다. 즉 이런 민족의 이동과 융화 그 중에서 중심적인 구심적인 작용을 논것을 공맹, 노장의 사상이였을 것이다. 사실 지금 와서 중국의 민족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공맹과 노장부터 공격해야 할것인바 이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아편전쟁이 일어나기전부터 중국은 대규모의 역토를 자랑하고 있었고 아편전쟁부터 1949년 까지 근 백년간 중국은 영토의 완전성을 기본상 보존하였다. 원시 노예시대부터 1949년까지 중국의 역사는 다민족 국가가 어울려 살아온 역사이다. 아울러 민족은 다르나 여러민족은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고 있을것이다. 그것은 역사속에서 구성되어온 일종의 공동적이고 공감적인 문화심리구조를 상징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의 퇴적물이 아닐가 한국의 단일민족성이 한국역사의 퇴적물이듯이. 아울러 대규모 영토국가와 다민족들이 같이 사는 전통은 곧 중국의 전통이라고도 말할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대대로) 중국을 자기의 가장 소중한 땅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 땅은 선조의 역사와 선조의 문화가 살아숨쉬는 땅이니깐... 그것은 1949년도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거두절미하고 1949년이후부터 민족문제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몰역사적인 시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중국이 현재 진행중인 서구대개발 프로젝트도 사실 공자의 和(화)사상을 그 근원으로 하고 있고 공자의 仁(인)사상을 근원으로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중국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경제제반계획형태를 소강(小康) 에서 대동(大同) 으로 및 화평굴기 등등은 19세가말  신유가사상가들의 말 그대로 옮겨 쓴것이지 다름이 아니다. 즉 역사성과 전통성이라는 것이다. 역사성을 무시하는 일부사람들은 소강이니 대동이나 화평굴기니 하는 말들을 중국정부가 80년대 이후 <신중화주의>를 꾀하기 위한 <신조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몰역사적이고 무식한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중국의 몇천년간의 전통성과 중국의 역사성을 알아야 1949년이후 를 정확히 알수 있고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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