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와 연변에 우리민족의 색채를 계속 지우고 있는 한족중공

谢谢  |   2005-07-07 07:13:44
제목 없음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닌 별개의 강이요, 이것은 송화강의 상류이다. 비문이 새겨져 있는 대로 서쪽이 압록강이고, 동쪽이 토문강인 선(線)으로 국경을 삼는다면 송과강 이남의 방대한 지역은 우리 땅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북간도 1권 51쪽』




※ 다음은 2004년 10월 30일 자『조선일보 북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외교부 장관이, 간도협약은 법리적으로 무효지만 영유권 문제는 그것과는 또 별도라고 발언했을 때 이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기에 족했다. 일본은 1909년 9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이미 박탈한 상태에서 백두산 정계비에 엄연히 조선 영토로 규정되어 있는 간도를 청나라에 던져주고 그 대가로 남만주철도 부설권 등을 따내는 범법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간도는 한국인들의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를 거쳐 아들로 대를 이어 살아온 생활의 터전이었건만 한국 영토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날 남북한 교류와 통합의 분위기에 위기를 느낀 중국은 동북공정 등으로 만주와 간도에서 한국적 색채를 지워내는 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대국주의 거인의 본모습을 되찾아가는 중국과 국수주의적 정책을 공공연히 표방해 가고 있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지금 북으로는 간도를 주장하지 못하고 동으로는 독도에 대한 시비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간도협약을 전후한 중국과 일본·한국의 지도들이 토문강의 실재를 증명하고 있으니 이제 마땅히 영토 주권을 주장해야 할 때이건만 사정은 쉽지 않다.

이런 시대적 국면 속에서 1910년대로부터 8·15 해방에 이르기까지 북간도 한민족 수난사를 다룬 안수길의 ‘북간도’를 새로운 장정으로 맞이하고 있다. 작가가 타계한 지 25년, 웬만한 독자들은 ‘북간도’란 제목만 들어봤지 읽어보진 못했던 터다. 나 자신도 세로쓰기 인쇄로 눈 아프게 보던 ‘북간도’를 가로쓰기 새 책으로 다시 보는 감회가 새롭다.




※1900년대 초 타작을 하고 있는 간도 지역 이주 한인들의 모습』


이 대작은 안수길이 1940년대 제국주의 일본 지배 하의 만주 생활에 대한 심리적 부채감 속에서 간도를 한민족의 또 다른 고향으로 기록해 두려는 ‘역사가’의 태도로서 간도라는 대륙 공간에 대한 민족주의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소설이다. 지금 간도 문제가 다시 떠오른 시점에서 이 소설을 읽다보니 작가는 역사가를 넘어 ‘예언자’로 여겨질 정도다.

안수길은 ‘북간도’를 통해 만주와 간도를 한국인의 삶의 터전으로 재발견한다. 작가가 간도의 정신적 영유를 위해 펼쳐 보인 노력은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인물과 언어의 다양한 차원에서 펼쳐진다.

작가는 첫째, 역사란 결국 또 하나의 내러티브, 즉 이야기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간도(사잇섬)로 이주해 간 이한복 일가의 삶을 통해서 간도가 한민족과 혈연적인 필연성을 맺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한복-장손-창윤-정수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은 단지 그들 일가에 국한되지 않고, 민족적 보편성을 획득한다. 작가는 간도로 이주해 간 사람들이 역경을 딛고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유장하게 기록해 나간다.

작가는 또 이야기 곳곳에 추석·단오 등 민족 고유의 풍속을 살아 숨쉬게 하는 한편, 혀에 달라붙은 특색 있는 사투리로 그네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북간도’는 진짜 입말(=구어)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 생생한 함경도 사투리의 재현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할 당대의 업적인 것이다.) 비봉촌과 용정은 논밭·시장·학교·단체·거리·교회 등에 걸쳐 조선인의 생활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공간으로 풍요롭게 제시된다.



※ 『간도의 위치』


둘째, 안수길은 이한복 일가의 삶이 펼쳐지는 곳곳에 간도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들을 인용, 재구성해냄으로써 간도가 이야기의 차원뿐만 아니라 역사적 차원에서도 한민족의 실질적인 영유 공간임을 보여준다. 이한복은 청·조 간 국경선을 규정한 백두산 정계비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인물이다. 간도의 한국인들은 정계비의 존재와 간도협약의 불법성을 배경으로 기미독립선언보다도 앞서 무오독립선언을 이뤄내지 않았는가. 작가는 소설 속에 봉오동과 청산리 등에서 벌인 잇따른 무력 독립 투쟁, 일제의 보복 학살과 독립군 색출, 용정 조선은행 강탈 사건을 위시하여 일제 말기까지 명맥이 끊이지 않은 저항 투쟁 등을 통해 간도를 실질적인 영유 공간으로 변모시켜 나갔다. 간도라는 한국인의 민족적 고향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외교권과 국권의 상실, 만주사변과 태평양 전쟁 등을 거치면서 오히려 현재적인 삶의 터전으로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북간도’는 식민지 시대 저항과 적응(또는 순응)의 이분법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 소설 속의 주요인물인 이한복 일가와 최칠성 일가는 서로 다른 태도로 시대적 변화와 상황의 전변을 겪어나가지만 결국 운명적 공통성에 이르게 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로써 작가는 시대가 요구한 내셔널리즘의 형상을 창출해낸다. 안수길이 ‘북간도’를 쓴 시기는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민중의 항거가 정점에 달해 4·19혁명으로 발화된 후 지식인과 학생을 중심으로 민족주의적 에너지가 분출하던 때였다.

‘북간도’라는 대작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의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상황과 민족 또는 민족주의의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민족주의가 존재한다. 과거의 파시즘과 심리적·지연적으로 연결된 민족주의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좌파 사상과 결부된 민족주의다. 전자는 남쪽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퇴조해 가고 있는 중이고, 후자의 한 지류는 북쪽에서 파시즘의 또 다른 얼굴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그것이 곧 그들의 위기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가 민족주의의 부정적 진화 형태를 분명히 목도하게 된다고 해서 오늘날 한국이 처한 험난한 국제적 상황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족에 대한 사유 자체를 포기하거나 민족적 운명의 공통성을 조롱하는 일을 세련된 세계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지식계 일각의 풍토인 듯하지만, 이러한 댄디즘의 공허 아래 민족적 현실은 엄연히 존재하게 마련이다. 민족에 대한 사유, 더 나은 삶을 향한 진보의 노력은 포기될 수 없다. ‘북간도’를 새로 읽으며 한민족의 현실과 험난한 앞길을 아울러 생각해 보게 되는 오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방민호·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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