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양과 박정희

지나가다  |   2005-07-04 09:13:21
- 이거 어떤 한국분이 조자양사망에 대해 평가한 글입니다.   이분은 개인적으로 조선생에 대해 애증을 표현하더군요...ㅎㅎㅎ     한 1년정도 지난 글인데 여기 여러분을 위해서 조자양부분만 퍼왔습니다. 조자양 선생. 개인적으로 밉지만 인정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중국의 박정희가 되고자 했던 사람이지요. 새로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정치개혁정책을 세우고 실천했던 선구자입니다. 5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영웅이지요. 당태조에 비교될 만합니다. 평범한 한국인보다 박정희라는 인간을 잘 이해한다고 해야하나요. 조자양선생은 중국의 앞날을 고민하면서 박정희라는 인간에게 매료가 되지요. 미국에 자주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경제개발에 성공하는 한 인간의 모습에서 중국의 미래를 보았을 겁니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전, 한국의 경제개발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드문거 같습니다. 백총객조차 모르는거 같으니.. 그 중심에 서있던 사람이 바로 조자양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생은 박정희 전대통령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그 때는 그냥 다들 웃고말았는데 지금의 중국을 보면 입맛이 씁쓸하지요. 많은 분들이 조자양 선생이 중국의 양심이고, 민주화의 선구자라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은 틀립니다. 우리입장에서 보면 시대의 간웅이었고, 늙은 너구리였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이 바로 조자양선생의 작품입니다. 조자양선생이 중국정계에서 정말로 영향력을 상실하고 은거했다는 걸 믿습니까? 그걸 믿는 순진한 사람은 정치관련 역사책좀 봐야합니다. 제 사견이라는 전제하에.. 조자양선생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건 천안문 사태부터 시작합니다. 조선생은 새로운 중국을 위해 경제개발과 동시에 정치개혁을 해야했지요. 한국의 박정희대통령이 민주화를 막고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훗날 정치개혁에 필요한 정적을 암묵적으로 보호했던 것처럼 말이죠. 조선생에겐 공산당 밖의 민주세력이 중국의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만들어놓은 중국의 민주화세력은 천안문 사태를 고비로 붕괴됩니다. 애국자인 조선생 눈에서 눈물이 흐를 수 밖에요. 조선생의 눈물은 민주화 인사들을 위한 눈물이 아닌 중국을 향한 눈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이에따라 경제위주의 기형적인 발전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조자양선생이 실패한 결정적 이유는 조자양선생에는 다까기 마시오라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이 평생을 두고 괴로워 해야했던 이름이 없었다는 겁니다. 일부 지적자만심에 가득찬 허영덩어리들이 다까기 마시오라는 이름을 무슨 자신들의 지적오만함을 내세우기위해 떠드는데 그 이름에 숨겨진 슬픔조차 모르고 있지요. 이름이 가지는 무게때문에 비극의 길을 가야했던 한 인간의 슬픔을 모르지요. 골치덩어리 박지만이라는 인간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수구꼴통뿐이라고 생각합니까? 민주화인사들도 상당수가 포함됩니다. 국가를 사랑하고 독재를 반대했지만 박정희라는 인간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자양선생은 이기적이었습니다. 너무 깨끗하게 놀려고 했지요. 그게 문제입니다. 그때 눈물로 호소하기보단 좀더 강경한 방향으로 갔어야 했는데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겁니다. 요즘 중국공산당 내부에 원총리를 조자양선생의 대리인으로 추켜세워주고 있지요. 이걸 보면서도 조자양선생의 중국정계에 대한 영향력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만 나올뿐입니다. '원총리는 조자양선생의 평범한 보좌관이 아니라 보좌관이상이다.' 이게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는 건.. 하지만 조자양선생이 박정희대통령이 되지못하는 것처럼 원총리또한 조자양선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마 서구국가에선 '조자양 사망 축하파티'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 꽤 있을겁니다. 조자양선생.. 한시대의 영웅이었고, 적조차 존중할 정도로 인물이었습니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는 동북공정이나 할줄 아는 후진타오가 아니라 개혁개방의 실세인 조자양선생이라는 걸 아니까요. 조선생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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