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속의 고요처럼...
건필 |
2005-06-28 06:09:58
관계와 평등에 관해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눈높이가 같은 상태에서라야 한다.
관점을 맞춘다는 차원이 아니라
나와 너는 동등한 인간으로서 만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든지, 내가 낮추었다는 생각이 잠재적으로 있다면
그건 언제건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전제는 남녀, 인종, 국적, 학력, 경제력 등 여러 차원에서 주어져야 한다.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던지, 아님 현재 누리고 있는 혜택이나 쥐고 있는
기득권이 당연하다는 인식의 사람이라면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나,
네가 현재 누리는 것은 정당치 않다는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관계는
모래성처럼 스러지고 만다.
내가 대학 다닐때 일이다.
봉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당시 그 공장에는 필리핀에서 온 사람들이 네 명 있었다.
그 중에 나는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스물 아홉살의 한 여인과 친해졌는데,
그녀는 필리핀에 네 명이나 되는 아이를 두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필리핀의 보편적인 남자가 그러하듯이 아내를 여럿 두고 있었고,
그녀 또한 그 아내들 중 한 사람이었다.
난 그녀가 몸이 아프거나 하면 스프를 사가지고 가서
남자 하나에 여자 셋이 쓰는 한 방에 병문안을 가곤 했다.
난 내 자신이 정말 대견했다.
사람들처럼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고,
스스럼없이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녀는 나의 그런 태도에 무척 감사했고,
자신들이 한 방에서 사는 참담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녀가 나를 너무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은근히 기분 나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필리핀인들을 조금은 멸시했고,
가난한 조국을 가지고 있다는 것, 피부색이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고 무시하고 했으니까..
자기들도 결국은 가리봉에서 공장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유머나 낮은 처지의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꼽히는 처지였음에도
그 불평등한 차별을 고스란히 필리핀 사람들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난 그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네들을 욕했다.
지들도 뭐 잘난거 하나도 없으면서 왜 저럴까 속으로 분개했었다.
그러나 그네들의 차별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녀가 나에게만은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불쾌해졌고, 그런 감정은 점차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한번은(점심을 먹고 난 후인것 같다.) 내가 그녀를 조금 무시했었다.
물어도 대꾸도 잘 안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듯 그렇게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희진 나뻐!"
그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이요, 불쾌함의 표시였다.
그 후로 "나뻐"라는 말은 내 가슴 깊이 박혔고,
나의 간사함과 교만함에 두고두고 후회를 했었다.
그렇다.
내가 너보다 낫고, 내가 너보다 우월하고,
내가 누리는 혜택이 당연하다는 잠재적인 인식이 깔린 상태에서는
절대로 평등한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난 지금 베풀어주고 있고, 넌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요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남녀의 만남이나, 친구의 만남이나 그 누구와의 만남에서도
우리는 그런 잠재적인 권위의식과 교만함을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잠잠하고 평안해 보였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게 나에 의해서건, 상대에 의해서건.
그리고 그런 잠재적인 불평등이 개입된 만남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판단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정말 바람직한 관계인지,
아님 불평등을 감수하면서라도
인간적인 관계 그 자체에 매여서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을 말이다.
-다음 블로그에서 아무 생각없이 퍼온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