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따듯한 마음이 모든 연변 분들에게~~

특전사  |   2005-06-28 01:49:47
조선족들이 찾는 친정집 장춘사람 황용호씨 뉴욕에 차린 “장춘한방원” “장춘한방원”의 황용호 한의사, 그는 뉴욕에서 처음으로 중국 조선족이 운영하는 병원을 열어 미국에 첫발을 디딘 1000여 동포들의 정착을 돕고 동포사회 각종 활동의 기초를 마련한 사람이다. 미국 정착 1975년 장춘의과대학에 입학한 황용호씨는 원래 의과의사였다. 그는 중국의과대학에서 중의학과 서양의학을 동시에 배운 덕으로 미국에 정착하면서 한방원을 개업하였다. 1990년 이모님의 초청으로 어머니와 함께 미국 칸사스씨티로 이민간 황씨, 그러나 미국에 간지 3개월만에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파킨스병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는 것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칸사스씨티의 한 미국인 병원에 취직, 미국인 의사에게 침술을 가르치는 한편 미국 침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환자를 볼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병세가 약화되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병원을 나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1994년 그는 뉴욕으로 이주, 항상 곁에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병원업무를 할수 있는 현재의 한방원을 차렸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였다. 중국에서는 환자들이 줄을서서 기다렸지만 개업한지 3주동안 환자 한명도 방문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당시 성업중이던 한국인 봉제공장에 다닐 생각까지 하였다. 넷째주가 되어 침을 맞으러 온 사람이 첫 환자였다. 어느 환자에게나 그랬듯이 정성들여 치료한 결과 왔다간 환자들이 자기의 친족들을 소개하면서 방문 환자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허나 행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한약방을 지키며 기약없이 환자를 기다리는 나날은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련속이였다. 돈에 악착하지 못했던 그는 약값 정도의 치료비만 받으면서 환자들을 성심껏 보살폈다. 그때 치료받은 환자들이 지금도 황원장을 찾으며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3년이 지나 병원이 안정을 찾을 무렵인 1997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황원장의 병원은 새로운 손님들을 맞게 되었다. 조선족들의 본가로 당시는 한여름 슈퍼마켓 뒤마당에서 밤을 지새우는 동포들이 있을 정도로 막막하던 시절. 오갈데 없는 동포들이 직업을 찾고 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황원장은 그동안 인연을 맺어온 한인들을 통해 직업을 소개해주고 방을 잡아주며 동포들의 정착을 도왔다. 황원장의 병원집은 동포들의 첫 기착지이며 또 련락소이기도 했다. 90년대말 한때 지하실에 50명이 머물 정도로 병원 집은 드나드는 동포들로 북적거렸으니 2004년말까지 거쳐간 동포수가 줄잡아 1000명 이상이다. 사람을 소개해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들을 때에는 “이제 이 일을 그만두아야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병원집은 2004년까지 동포들의 “본갚로서 마음이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이 손을 내밀며 도움을 청하는 곳이였다. 미국 정착에 역시 어려움을 겪었던 그였다. 2002년 친구를 통해 황원장의 주소만 들고 병원집을 찾은 연변출신 신영국씨는 “택시를 타고 병원집에 도착하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시더라”면서 “그때의 감동과 고마움을 잊지 못해 지금도 주말이면 병원집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제는 고향친구를 찾거나 저렴한 중국인 려인숙을 찾아드는 동포들이 늘면서 황원장의 병원집에 머무는 동포들은 없지만 병원집은 여전히 동포들이 타주에 갔다오거나 명절이 되면 찾아오는 본가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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