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과 한국인의 민족관 차이

진리  |   2005-06-01 13:45:37
이젠 조선족에 대해 그만 토론하시오 -------------------------------------------------------------------------------- 중국인과 한국인의 민족관 차이 -재중국 조선족정책의 수립을 위한 기본적 검토- 권 중 달(중앙대 사학과 교수, 해외민족연구소 소장) 서론 - 민족 개념의 형성배경 우리가 보통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재외동포라고 하고 있지만, 그들이 재외에 거주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재외동포정책도 당연히 재외거주동포의 역사적 과정과 그들의 의식을 이해한 토대 위에서 수립되어져야 할 것이다. 재중국 조선족은 그들 스스로가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있고, 중국 당국도 조선족으로 호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은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명과 연관하여 우리 스스로를 한민족(韓民族)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달리 역사상 한 시대의 왕조(王朝)인 조선왕조(朝鮮王朝)로부터 명칭을 가져다 부르고 있으므로 적지 않은 점에서 내국인이 인식하고 있는 의미와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그들이 중국지역에 거주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여야 비로소 이해하여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재중국 조선족의 경우에 중국당국도 그들을 '조선족'으로 호칭하고 있는만큼 이 단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인 한민족(韓民族)과 피를 나눈 형제관계인 '조선민족', 그러한 점에서 한족(漢族 = 中國人)과 본질적으로 다른 민족이어서 한족(漢族)과 융합(融合)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듯이 하나의 민족은 통일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민족국가'라는 개념과 연관하여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중국당국이 조선족을 자기들 한족(漢族)과 융합(融合)할 수 없는 다른 족속(族屬)으로 이해한다 든가, 혹은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중국의 국가구성에 문제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민족에 대한 견해가 중국인과 한국인이 다른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이 생각하는 민족관의 차이를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민족관의 차이를 이해하여야 비로소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을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에 대한 우리의 대책도 시행착오 없게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근세에 들어오면서 『민족』이란 단어를 항용해 왔다. 『민족』의 활로, 『민족』의 생존, 『민족』의 단결, 『민족』의 고난 등 민족을 하나의 단위로 하여 여러 단어를 붙여서 쓰거나 혹은 『민족』이라는 용어와 다른 용어를 합성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민족주의』, 『민족애』, 『민족사』 등이 그것이다. 사실 세계사(世界史)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민족이란 "근대국가와 근대 자본주의 성립의 결과로 그것과 궤도를 같이하여 근대에 형성된 인간집단"50)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歷代)의 선인(先人)들이 남겨 놓은 문집(文集) 속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경우는 구한말의 인물인 권도용(權道溶)의 추범문원전집(秋帆文苑全集)51)에 처음으로 보이는 만큼, 우리에게서도 민족이란 용어는 근대라는 시기와 맞물려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쨋던 우리나라에서는 근세 이후에 『민족』이라는 단어를 넣은 각종 단체가 많이 생기었고 최근까지도 『해외한민족연구소』, 『우리민족 서로 돕기 운동본부』, 「해외민족연구소』 등민족이라는 단어를 넣은 단체나 기관이 생기고 있다. 이 『민족』이라는 단어 대신 『동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와 뚜렷이 구별하며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우리는 자주 『민족』, 혹은 『동포』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경우는 많지만 실제로 이 민족, 또는 동포라는 단어가 포괄하고 있는 범위나 내용을 명확히 구별하고 그것에 따라서 그 단체의 활동범위를 결정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그동안 민족이라는 단어를 서명(書名) 속에 넣고 저작(著作)한 저술(著述)의 경우를 보아도 마찬 가지인 것 같다. 예컨대, 『민족정신과 청백리상』 이라는 책에서는 민족정신이나 민족의 동량이라는 말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우리 민족의 범위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52) 마치 민족이란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수 있다는 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족통일연구원이 발행한 『통일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에서 박종철선생은 민족(民族)의 개념을 정의 하기 보다는 여러 형태의 민족주의를 예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서 주의, 주장에 따라서 민족의 개념이 달라 질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53) 또한 잠정적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문화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독립된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는 집단의식'이라고 민족주의를 정의하기도 하였는데, 1945년 이후 남북한 간에는 문화적 이질화가 심화되어 있음을 상기할 때에54) 이러한 정의(定義)에 입각해 보면 결국은 북한과 남한은 동질성이 점차 희박해 지므로써 장차 이민족화될지도 모른다는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따라서 어느 한가지 정의(定義)만으로 민족의 개념을 정의(定義)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민족』이라는 단어는 비록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되고 주목된 것이기는 하지만, 서양의 용례와 같은 용례로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또 그러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러운 역사과정에서 그 의미가 독특하게 만들어 졌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55) 그것은 서구의 역사와 우리의 근대사 또는 전 역사 과정이 다른데서 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근대에 들어 서면서 같은 종족끼리 정치적 경제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추세 속에서 나타난 역사 현상인데 반하여, 우리의 역사는 오랜 세월 한반도에서 정치적, 경제적 공동체를 구성하여 왔다는 역사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서구에서는 민족국가를 건설하고 난 근대이후에는 대외적 확장이라는 과정을 겪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근세에 들어오면서 우리 종족이 다른 외족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과정을 겪었던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민족』, 또는 『민족주의』를 이야기 할 경우에는 대체로 외세에 대한 저항, 또는 대항을 전제로 한 단결의 당위성으로서 제시되는 것인 경우가 많게 되어 민족이라는 용어 뒤에는 우리민족을 구성하는 핵(核)이 되는 종족(種族)인 한(韓)을 강조하므로써 외족과 구별하는 의식이 깔려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동아시아 국가 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역사 환경과 다른 중국의 경우에는 우리의 경우와 같이 핵(核)이 되는 종족(種族)인 한족(漢族)을 대표(代表)로 하여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사해동포(四海同胞), 즉 범세계적이라는 용어를 필요할 때에 사용하므로써 우리가 말하는 민족(民族)이라는 개념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민족(民族)이라는 용어를 쓰더라도 그 용어가 탄생하고 사용되는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認定)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민족(民族)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보기 보다는 이 민족(民族)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背景)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민족개념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검토 하지 않고 다만 다른 지역에서 사용된 개념을 가져다가 우리의 경우에 적용하려고 하므로써 풀리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의 개념을 고정된 하나의 개념 속에 넣어서는 안되고,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각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내용을 달리하면서 탄생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즉, 가장 먼저 산업사회를 건설한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들 「시민민족주의」 창안하였으며, 선진 산업국가의 경제적 압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국가민족주의」를 내세운 독일, 이탈리아, 일본등도 있으며, 2차 대전후에 북한, 리비아, 아랍국가들은 반식민지를 내세우고 사회주의를 통한 민족주의를 내세운 「사회주의 혁명적인 민족주의」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던 것이다. 다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은 문화적 유산을 가진 신흥공업국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중상주의적 민족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56)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재외동포를 「민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우리와 묶어 보려고 하지만 재외동포들 스스로가 인식하는 민족이란 개념이 우리가 갖고 있는 민족이라는 개념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어떠한 하나의 논리에 입각하여 민족의 개념을 정의(定義)하고, 이 논리를 가지고 재외동포들을 우리와 묶으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지금 이 시대에 왜 그들을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되는가하는 문제에서부터 재외동포정책의 출발점을 삼아야 할 것이다. 즉, 20세기 말이라는 시점에서 우리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라는 역사적 상황과 앞으로 전개될 세계사를 충분히 고려하여 민족의 개념을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먼저 우리가 생각하였던 민족의 개념을 검토하고 동시에 중국인들이 가졌던 민족의 개념을 비교하여 봄으로써 우리가 종래에 가졌던 민족개념의 한계성을 찾아 내려고 하는 것이다. 동시에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민족이 민족(民族)의 역량(力量)을 극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명사적 측면을 고려해 보고, 우리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재중국 조선족에 대하여 어떠한 기본 자세를 가져야 될 것인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4. 재중국(在中國) 조선족(朝鮮族)의 국가·민족 의식(意識) 중국인들이 중국민족의 형성과정을 이해 할 때에는 중국영토 안에 들어 와 사는 사람으로 중국문화를 수용한 사람이면, 그들의 출신 종족을 가리지 않고 중국민족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역사에서도 황제(黃帝)라는 민족(民族)시조(始祖)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실제 인식에서 그렇게 큰 작용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에 비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한민족(韓民族)은 「단군할아버지』를 내세운 단일혈통이라는 인식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배타적 인식이 강한 면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중국인의 중국(中國) 민족관은 외향적 확대를 기본 틀로 하고 있지만 우리의 민족관은 향내적 축소를 기본 틀로 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중(韓中) 두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족의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을 보면, 한국인들의 생각은 비교적 혈통 중심인데 비하여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인을 판별하는 기준은 문화와 화화(華化)에 무게를 더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현실적으로 중국의 동북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에 대한 시각에서도 한국인(韓國人)과 중국인(中國人)은 상당한 차이를 갖게 하고 있다. 중국 정부 당국이나 중국인들은 조선족은 혈통과 문화상으로는 조선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의하여 중국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1949년 10월 1일 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었다. 이때로부터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 대가정의 성원의 하나로 되었다.』62) 라고 하였다. 즉, 그들은 '중국이 통일된 다민족의 사회주의 국가이다'63)라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조선족도 넓은 의미의 중국인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우리는 재중국 조선족에게 우리와 같은 혈통이므로 당연히 중국인보다는 우리와 더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당사자인 재중국 조선족이 갖는 민족의식은 어떠한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그런데 김장욱이 연변조선족 청소년의 특수성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연변의 조선족 청소년들은 자기가 소속한 국가는 분명히 중화인민공화국이고, 혈통상으로는 조선족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64) 이러한 점에서 국가와 민족이 일치하는 상황에 익숙한 우리 내국인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선족에게 동족으로서의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구분하고 있는 그들에 대하여 보다 커다란 실망을 갖게 된다. 또한 재중국 동포 가운데, 혈통상으로 분명히 한국에 선조를 두고 그것도 분명히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국국적을 취득하려고 할 때에는 현실적으로 외국인으로 대우할 수밖에 없어서 혈통을 민족구분의 기준으로 삼고, 동시에 민족 단일국가라는 것을 내세우면서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못하는 모순을 낳게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바로 우리들이 우리가 속한 민족과 국가가 동일하다는 경험과 인식을 갖고 있는데 비하여 재중국 조선족은 자기가 속한 국가와 종족이 다르다고 인식하는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였고, 또한 현실성을 고려하지 못한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며 단순한 민족의식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중국 조선족에 대한 정책이나 시각은 혈통을 강조한 관념적 애국애족주의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재중국 조선족이 갖고 있는 민족과 국가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이중성으로 인하여 정책 결정에 적지 않은 혼란을 겪게 마련이다. 5. 중국사회의 변동과 재중국 조선족의 변화 재중국조선족은 대체적으로 2 - 3세대 이전에 한반도에서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하여 중국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이어서 대체로 그들의 혈통(족보)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뿐만아니라 아직도 중국의 동북지방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우리의 전통 풍속과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정도의 문화적 공통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동족(同族)으로서의 친근성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그들도 우리나라(한국)를 우리처럼 우리민족이 이룩한 우리의 국가라고 인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민족과 국가를 별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중국이라는 국가 체제 속에서 조선족의 자치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으며65), 이것은 우리의 인식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정부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렇게 분명한 중국국민으로서의 의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유지하여, 우리와 같은 언어, 습관, 문자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가? 그 이유는 그들이 남달리 우리의 전통문화를 유지해야겠다는 의식이 강하였기 때문이거나, 중국정부 당국이 적극적으로 이를 보호육성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들의 선조가 중국으로 이주한 이후부터 최근 까지 중국사회는 공업화, 상업화 되지 못한 채 농업 위주의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이동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이후에 공산주의 정책이 주민의 이동을 극도로 제한하였기 때문에 재중국조선족도 그들의 선조들이 거주하였던 지역에서 집단적 거주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집단 거주하는 환경 아래에서는 자연적으로 선조들이 가졌던 언어, 습관, 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실 생활에 편리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중국은 과거와 다르게 동적인 사회로 전변하면서 연길등 조선족집단 거주지로부터 북경이나 상해등 대도시로 진출하는 젊이이들이 늘어 가고 있어서, 현재와 같이 조선족이 집단 거주하면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유지할 수 있을 수 있는 환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재중국 조선족이 중국사회의 변화와 짝하여 한족(漢族) 사회 속으로 개별적으로 진출하게 되고, 이러할 때에 우리의 언어, 문화, 관습을 유지하기 보다는 한족(漢族)의 언어, 문화, 관습을 익혀서 생활하는 것이 편리하고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한화(漢화)를 막을 수 있는 명분(名分)으로서의 민족의 혈통(血統)이 설득력을 갖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문화를 현재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혈통적 인소(因素)때문이 아니고 역사환경 때문이었다. 따라서 역사환경이 바뀌면 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다른 문화에 훈습(薰習)될 개연성(蓋然性)이 강하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1960년이후로 도시화현상이 일어나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많은 관습이 없어지거나 변질되고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향후 2 - 30년 후에는 중국내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것은 만주족이 중국으로 남하하여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들의 언어, 문자, 관습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66)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정부의 개혁개방정책이 펼쳐진 이후로 중국사회는 동적(動的)인 사회(社會)로 변하여 가고 있고, 이것은 중국내에서 조차 각지방의 방언(方言)이 심각하였던 문제가 보통화(普通話)라는 표준어를 보급하여 전국민의 의사소통이 거의 가능하게 되어 또 다른 대융합(大融合)의 시기가 다가 오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역사 환경 속에서 조선족 집단거주지가 계속적으로 유지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재중국조선족의 입장에서라면 조선족의 고유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당국으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선족이 그 고유문화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이 점차로 깨어지기 때문에 고유문화를 유지한다면 실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될 지 모른다. 우리의 재중국 조선족에 대한 정책의 방향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와 같이 재중국 조선족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경제적, 정책적 노력을 거쳐서 만들어진 상황이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정부 당국의 보호책 때문도 아니며, 재중국조선족 스스로 애족주의에 입각하여 우리문화를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결과도 아니다. .... 그들이 한족(漢族)에 비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로서의 우리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을 우리의 전통문화 향유의 동반자로 삼을 수 있다면 다가오는 21C에 여러 다수 민족과 더불어 경쟁적 관계에서 살아갈 때에 문화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훌륭한 우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 재중국조선족에 대한 정책의 기본 방향 우리가 재외동포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와 혈통이 같은 사람들에 대한 가족적 감정의 발로에 머무를 수 없다. 이에 더 나아가 세계 인구 45억 가운데 한민족이 독자적 정치, 경제, 문화권을 유지하면서 지구상에 앞으로도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지난 20세기 초에 외세의 침략을 받는 시기에는 민족주의가 나타나서 안으로 응고하여 민족적 단결을 강조하였다. 그 당시의 세계는 어느 한 민족이 다른 한 민족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집단적 침탈사항이 벌어진 시기였기 때문에 향내적, 응고형의 민족주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시의에 적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가오는 21세기의 문명은 교통의 발달하고 인적, 물적 교류가 빈번하여져서 오히려 소집단적 거주환경은 더욱 파괴(破壞)될 것이다. 교통시설이 없고, 현대문명으로부터 격리된 소수의 산지족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유통될 것이다. 이 때에 빠른 유통과 함께 경쟁력있는 언어와 관습, 문화도 빠르게 세계로 확산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모습은 이미 한국에서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논의가 나올만큼 되었다.67)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한 민족이 그 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생존하려면 우리의 문화를 지킬뿐만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유통시켜서 우리문화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화가 생명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나와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문화의 생명력은 사람에 의해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우리문화가 생명력을 갖게 하기 위하여서는 우리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의 숫자를 더욱 늘려 가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68 ) 그러할 때 누구부터 우리문화를 이해하고 유지하며 발양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선 내국인에서부터 시작하여야 겠지만, 우리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재중국조선족이 계속하여 우리문화를 향유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첫 단계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재중국조선족이 우리의 말과 문화를 이해하고 향유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하고 실제로 이익이 되게69) 하도록 정책이 펼쳐져 나아가야 한다. 즉, 동적인 사회로 변한 중국사회로 진출하기보다는 우리와 연관을 맺는 것이 보다 실리적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조선족이 사는 중국사회가 동적인 사회로 변하여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지킬 것이며, 우리문화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게 되어 나아가서는 이들을 매개로 하여 한족(漢族)에게까지 우리문화를 파급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우리의 문화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높은 수준의 문화라는 것 자체만으로서 생명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지구상에 수많은 종족이 존재하였었고, 역사의 한 시기에는 상상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룩하였다가 지금에 와서는 그 흔적조차 남지 않은 종족이 많으며 이 숫자는 현재까지 생명력을 갖고 살아 남아 있는 종족의 수보다 훨씬 많다. 이는 앞에서 중국 주변의 수많은 종족의 운명을 보아도 알 수 있다.70) 그러므로 우리문화의 세계적 전파(傳播)를 통한 우리문화를 향유(享有)하는 인구(人口)를 증가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문화의 세계적 전파(傳播)를 통하여 민족의 생명을 유지 확산시키려 할 때에, 재중국조선족은 그 중요한 교두보(橋頭堡)가 될 수 있고, 이 교두보(橋頭堡)는 우리의 노력(努力) 없이 만들어진 천혜(天惠)의 것이다. 그런데 자칫 이렇게 천혜(天惠)로 만들어 진 교두보(橋頭堡)가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여 지킬 수 없게 된다면, 이미 우리말도, 문화도, 습관도, 문자도 알지 못하며 세계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와 동일한 혈통(血統)을 가진 사람들에게 혈통(血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문화를 익히게 하고 도 이들을 우리문화 전파(傳播)의 전진기지(前進基地)로 삼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21세기는 소수민족이 그 민족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어 가고 있다. 그것도 20세기초처럼 집단적 지배의 방법이 아니라 고도의 문화력으로 다른 문화를 잠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우리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인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다른 고도의 문화에 동참된다. 따라서 재외동포에 대한 정책은 민족의 생존 정책과 일치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서는 아직은 우리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재중국조선족에게 계속 우리와 공존공영할 수 있는 조건과 신뢰를 쌓아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혜적이거나 감성적인 교류의 대상으로 재중국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각은 빨리 청산되어야 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통하여 계속 우리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실생활에 편리하고 유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검색 입력박스
검색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