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일본인들........ 중국,한국은 피해자

씹지나  |   2005-05-30 12:57:46
731부대 등의 마루타 실험 1. [<나의 참전 기록>이라는 자비 출판 종군기의 저자 A씨(77세)가 중국에서의 인간대상 독가스 실험을 증언] 1940년 가을 양자강 중류의 안경(安慶)시에서 A씨는 가스 담당으로 약 50명과 함께 1개월간 중국 파견군 화학전 교육을 받았다. 교육 기간의 마지막에 교관이 "여기는 적의 전선에 가깝다. 독가스의 위력을 알아 보는 실험을 한다. 실전에 도움이 된다"며 가스 실험을 했다. 실험 장소는 시 교외의 절. 자그마한 탑 안에 한 명의 중국병 포로를 묶어두고 점화한 몇 개의 붉은 가스통을 던지고 문을 닫았다. 붉은 가스통의 효력을 눈앞에서 보여줄 의도였다. 조금 지나 나뒹구는 소리가 사라지자 실신한 포로를 탑에서 끄집어냈다. 교관은 "폐가 어떻게 변했는가 보여주겠다"며 메스로 흉부를 갈라 대량의 가스를 흡취해 보라색으로 변색된 폐를 보여주었다. "폐는 몇 번인가 이상하게 수축과 이완하다 멈췄다. 무서운 광경이었다"라고 A씨는 회상했다. 포로는 인체 실험이라고까지도 할 수 없는 조잡한 방밥으로 생체 해부당했다. [중략] 육군 군의 대위 출신이 쓴 <악마의 일본 군의>는 버마 전선에서 상관 군의가 행한 만행을 묘사하고 있다. 독가스 사용은 아니지만 붙잡은 적 스파이 2명에게 얼마나 많은 공기를 정맥에 주사하면 죽는가, 고환을 적출하면 민사(悶死) 하는가를 마취도 없이 실험했다고 한다. 실험으로 죽이고 본보기로 죽이고 정규 전투와는 양상이 다른 살육이 일본군에는 많아 보인다. (95년 8월 2일 마이니치 신문 연재) - 출처: 김영애 편역, 앞에 인용, p. 322, 2. [다음은 중국에서 군의로 종군했다가 전범으로 투옥되어 1956년에 일본으로 풀려나온 켄 유아사라는 의사의 중국인 생체 실험 고백입니다.] 저는 중국 샨시 성의 남부에 있는 한 시립 병원에 바로 파견되었습니다. 전 그곳에 1942년 1월 1일에 도착했습니다. 아직도 혹독하게 추운 3월 중순 어느 날, 점심 식사 바로 후에 병원장인 니시무라 중령이 전 대원을 소집하였습니다. 7-8명의 의학 박사, 한 명의 회계 장교, 또 한 명의 약사, 그리고 한 명의 치과의사였습니다. 전부 장교였습니다. 원장은 일하는 여인들과 다른 여인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그들이 떠난 뒤에 원장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수술 연습을 수행할 것이다. 1시에 다시 집합하라." 저는 뼈속까지 오싹했습니다만, 그건 날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을 떠나기 전에 이들이 생체해부를 여기서 하다는 말을 들었더랬거든요. [중략] 저는 제 직속 상관인 히라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때 저는 원장 곁에 있는 두 중국인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억세고 얼굴이 넙적한 30세 쯤 된 남자였는데, 조용하고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미동도 없이 서있었습니다. 저는 즉각, 저자는 공산당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자 옆에는 한 40 쯤 먹어보이는 농부가 서있었습니다. 그는 방금 밭에서 끌려온 듯한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동자는 필사적으로 방안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세 명의 위생병이 소총을 들고 있었습니다. 간호원들은 수술 도구를 해부 테이블 옆에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수는 대략 15-6 명 쯤 되었습니다. 이것을 아마 섬뜩하게 무서운 광경으로 상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건 다른 어떤 일상적인 수술과 똑같았습니다. 전 아직 신참이었습니다. 전 그 사람들을 죽일 만한 이유가 꼭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히라노에게 물어봤습니다만, 그는 "우린 팔로군[북부 중국의 공산군]을 죄다 죽여 버릴 걸세."라고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체 했습니다. 간호원들은 전부 웃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적십자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원장이 "시작하자"고 말했습니다. 위생병이 의연한 남자를 떠밀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몸을 눕혔습니다. [중략] 저는 또 다른 자에게 배정된 그룹에 소속되었습니다. 한 위생병이 그를 앞으로 나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안돼! 안돼!"라고 외치며 도망치려 했습니다. 소총을 들고 있던 그 위생병은 그 농부만큼 재빨리 움직이지 못했고, 저는 이제 갓 부임한 신임 장교였습니다. 저는 군인으로서의 저의 명예를 아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장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자가 죽으면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은 정말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게 든 생각이라곤 그저, 나는 이렇게 점쟎게 차려 입고 있고 저자는 농사꾼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데, 둘이 싸움이라도 벌리게 된다면 그건 정말 난처한 일일 거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과시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그 농부를 떠밀면서 "앞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마 제가 명령한 것 때문에 기가 꺽여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매우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테이블에 앉아서는 누울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누우면 죽임을 당할 것을 아는 것처럼 "아이야! 아이야!"라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때 한 간호원이 중국어로 말했습니다. "잠을 자요, 잠을 자요." 그녀는 계속 했습니다. "잠을 자요, 잠을 자요, 들어요, 약기운이." - 일본어 식의 중국어였습니다. 억압자의 중국어는 언제나 그 어조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리는 없지." 그는 누웠습니다. 그녀는 심지어는 저보다도 더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녀는 키득거리며 웃었습니다. 악마의 얼굴은 무시무시한 얼굴이 아닙니다. 그건 환하게 미소짓는 얼굴입니다. 저는 의사에게, 당신이 주사할 곳을 소독하지 않으면 누가 요추 마취를 관장하기로 되어 있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응답했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린 이자를 죽일 거야." 잠시 후에 간호원이 그자의 다리를 때려보고 아픈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아프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들이 클로로폼을 들이쉬게 하려고 하자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잡아 눌러야 했습니다. 먼저 맹장 제거가 실행되었습니다. 두 명의 의사가 집도했습니다. 맹장염에 걸리게 되면, 맹장은 붓고 아주 딱딱하게 자라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아무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맹장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의사들이 한 쪽을 쨌지만, 또 다른 곳을 째서 뒤진 후에야 겨우 맹장을 찾아냈습니다. 전 그것을 기억합니다. 다음에 한 의사가 그의 한쪽 팔을 제거했습니다. 유탄이 박힌 팔을 제거할 때의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지혈하기 위하여 지혈대를 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두 의사는 창자를 꿰매는 실습을 했습니다. 창자나 위가 총알로 관통되었을 경우에는 그런 종류의 수술이 꼭 필요하지요. 그 다음에는 인두(咽頭)의 절개였습니다. 병사가 목에 부상을 당하면 피가 인두에 모여서 기관지를 막아 버리기 때문에 인두를 열어 제껴야 합니다. 현장에서 기관지 속을 가르는 용도로 쓰이는 특별한 갈쿠리 모양의 기구가 있습니다. 그 기구를 쑤셔 넣어서 갈쿠리로 열어 제낀 후에 제거하면, 기관지의 관만이 내부에 남게 됩니다. 피가 흘러서 빠져나갑니다. 그 수술은 거의 두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첫 번째 일은 기억에 남는 법이지요. 결국 사단의 모든 의사들이 수술실을 떠났습니다. 그 다음에 간호원들이 떠났습니다. 원장과 위생병들과 병원 소속인 우리들 만이 남았습니다. 제가 잡았던 그 작은 체구의 늙은 자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억센 남자의 입에서는 "헤, 헤, 헤"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숨은 그래도 강하답니다. 우리는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이 자를 뒷꼍에 그냥 갖다 버릴 것인지 잠시 생각해봐야 했는데, 그래서 원장은 주사기로 그의 심장에 공기를 주입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의사-현재 생존해 있는-와 제가 그자를 끈으로 목조라 봤습니다. 여전히 그는 죽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나이 먹은 하사관이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박사님, 이 자에게 마취제를 주사하면 죽을 겁니다." 뒤에 우리는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였습니다. [중략] [1942년에] 약 40명의 의사들이 타이위안시에서 회동했습니다. [중략] 그곳에서 법무관 두 사람이 두명의 눈을 가린 중국인을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모임을 주관한 의사에게 모든 것이 준비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의사가 끄덕이자 이들은 갑자기 중국인들의 배에다 대고 각각 4-5 차례씩 총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총알을 제거해내야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내야 할 과제였습니다. 우리가 이 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총알들을 제거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그렇게 수술의 성패를 측정했습니다. "하고 싶소?"라고 질문 받았을 때 저는 "아니오, 난 이거 노상 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결국엔 모두가 들러붙게 되어서, 출혈을 통제하는 등 무엇이든 돕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다 죽었습니다. [중략: 고참이 된 후에 신참 의무병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저는 헌병대에 가서 우리에게 포로 한 명을 넘길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다리 절단을 실습했습니다. 제가 잘라냈던 것에서는 고문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제가 놀랐었던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친구 정말 깨끗하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한 병사가 기절했던 게 기억나는군요. 한 번은 헌병대에서 교육 목적으로 두 명을 보냈더랬습니다. 그때엔 의사들이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둘중 한 명에게만 우리가 해야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나머지 한 명을 돌려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원장이 그자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원장은 자기 칼의 강도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겁니다. [중략] 우린 이것들을 잊어 버렸습니다. 우린 실제로 우리가 한 짓을 잊어 버렸단 말입니다! [중략: 전쟁이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우리중 약 60명은 샨시의 타이위안에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제가 했던 일들을 기억해내고 자백하는데 4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1956년까지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토오쿄오로 돌아왔을 때, 샨시의 그 병원에서 저와 함께 있었던 그 의사들과 간호원들 전부가 저를 맞이하기 위해서 시나가와역으로 나왔습니다. 간호원들이 제게 그러더라구요, "박사님,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우린 너무 죄송했습니다." 한 남자가 말했습니다. "유아사 박사, 천황 폐하의 정책이 정의로왔고 공산주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당신이 최선을 다해 주장했기를 바라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단 말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말했죠. "기억 나지 않아요? 난 당신들과 그 짓거리를 했단 말이오. 당신들도 그 짓을 했고 말이오."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부르르 떠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살인자였다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한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걸 했다는 걸 잊어 버리는 것은 훨씬 더 지독한 일입니다. 그건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삼년 반쯤 동안 약 10명 정도를 해치웠습니다. 전부 합쳐서 여섯 번, 저는 의사들의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습에 참여했습니다. 뇌와 고환을 제거했습니다. 우리 사단, 아니 중국 전역의 병원에서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 짓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침묵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망각할까요? 모두가 잊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는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 바로 이게 우리 스스로 믿게끔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만일 회상해내려 한다면 그건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조용한 것입니다. 그건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걸로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요. - 출처: Haruko Taya Cook & Theodore F. Cook, Japan at War: An Oral History (New York: W.W. Norton, 1992), pp. 146-51. [윗 부분은 한석훈 번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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