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사 일부(펌)
서울에서 |
2005-05-28 02:55:58
우리의 근대사중 일부 중국의 경우를 발췌해서 올림니다
중공 인민들의 역사적인 지식이 미천하여 올바른 교육이 절실이 필요합니다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전지구적으로 식민지쟁탈전을 하기 전에 그보다 훨씬 먼저 전통적 방식의 식민사업을 일으켜서 성공한 사례가 아시아에서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만주족의 중국 정복이다. 그것이 청나라이다.
만주족은 중국 전토를 무력으로 정복 한 후에 왕조를 세우고, 교과서적인 식민정책을 펴 나갔다. 그 첫째가 만주족과 한족의 차별화이다. 만주족은 지배계층이요, 한족은 철저한 피지배계층으로 이분되었다. 만주족의 남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태어나는 순간 그 혈통(만주족을 구성하는 8부족)에 따라 팔기군의 어느 한군데에 적이 올려진다. 그래서 만주족은 곧 팔기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팔기군의 무력이 청나라의 본질이다.
만주족은 전 중국의 피지배민중에게 만주족의 풍습을 강요했다. 신분적으로는 차별하면서 생활적으로는 동화를 시키려고 들었다. 그래서 근대개화 이전에는 모든 중국인들이 변발에 호복을 했다. 만주족은 계급적으로 신분적으로 평등을 허락하지도 않으면서 풍습과 문화에 있어서는 만주족으로의 동화를 강요한 것이다. 이 동화는 결국 실패했다. 왜냐하면 신분과 계급, 무엇보다도 결혼에 의한 혼혈이 없이 두 민족이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청조 2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만주족은 만주족이고 한족은 한족으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 차별받던 피지배민족인 한족들이 청조에 입사해서 충성을 바치고 봉공했다. 한족의 중흥 운동은 찾아볼 길이 없었고, 대부분의 한족이 만주족에 종사하고 그 통치에 적응했다.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천청파가 된 것이다.
멸만흥한의 기치를 내걸고 한족에 의한 중국의 재건을 주장하며 처음으로 치받은 것이 홍수전이 일으킨 태평천국의 난이었다. 이것을 만주족의 팔기군은 진압할 능력이 없었다. 아예 팔기군이 존재하지를 않았다. 이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한족인 증국번, 이홍장 등의 의병장들이었다.
만주족의 왕조인 청조를 지키기 위해 한족이 같은 한족의 거사를 진압한 것이었다. 한족이 만주족의 왕조를 쓰러뜨리고 한족에 의한 중국을 다시 세운 것은 손문의 신해혁명이 성공하면서이다.
일제시대는 36년이고, 청나라는 268년간이다. 일본은 계급적, 신분적, 혈통적 차별없는 동화정책을 시행했고(서둘러 속단은 마라, 이게 우리에게 반가웠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만주족은 계급적, 신분적, 혈통적 차별정책과 병행한 복속정책을 시행했다.
조선사람들과 중국인들이 다른 점은 이민족의 강압적이고 차별적인 지배를 근 3백년 가까이 받았어도 그 지난 역사를 그리 부끄럽다거나 수치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현실에 있어서 그 만주는 한족중국의 3개 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 현실이 중요한 거지, 백년전까지 만주족이 한족을 지배했네 어쩌네 하는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증국번, 이홍장을 친청파라고 욕하는 사람도 없다. 청조 268년간 조정에 출사하여 봉공한 한족들을 역적이라고 욕하지도 않는다. 만주족의 268년도 당당한 중국의 역사이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렇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