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망명시인 베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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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미국식 뒤따르는 것 위험" "혁명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중국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망명시인 베이다오(北島.56)가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내한해 26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그는 중국에서 정치범 석방 등 인권운동을 펼치다 가 1989년 톈안먼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유럽으로 망명했다. 1993년 이후 미국에 정착한 그는 현재 뉴욕주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5년 전 세계시인대회 참석차 내한한 뒤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그는 "첫 방문시 미국시인 앨런 긴스버그, 고은 시인 등을 몰래 만났는데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면서 "다시 서울에 와보니 민주주의를 성취했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모습이어서 한국인들이 굉장히 자랑스럽게 보인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고은 선생 등과 산에 있는 절에서 스님을 만나 적이 있다"면서 "당시 스님과 한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문이 등장하는 한국시나 문인화 등을 보며 두 나라가 한문문화권에 속한 데다 비슷한 문화적 전통을 공유해 서로 이해하기 쉽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한국 대중문화가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서 "대학 2년인 딸도 한국의 대중음악을 잘 안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성취한 이면에 물질주의나 상업주의 성향이 강한 문화가 함께 발달한 것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 이후 전 세계 여러 국가를 떠돌아 다녀서인지 '떠돌이'라는 표현을 잘 쓰게 된다"면서 "1993년까지 유럽의 6개 국가를 떠돌아 다녔고, 이후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살아서 그런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외부인으로서 특이한 관점을 가지게 됐다"면서 "나와 비슷한 운명을 가진 사람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나처럼 국적 불명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완전한 외부인으로 생활하면서 재미있는 경험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10년 간 미국에 거주하며 미국인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면서 "미국인의 문제는 마음속 내재된 고립감과 거기서 오는 소외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한국도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미국을 따라잡으려 노력하고 있고, 그런 노력을 하면서 미국식 라이프스타일 취하려 한다"며 "이는 매우 위험한 현상"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오늘 중국 관련 뉴스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쇼핑몰을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재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쇼핑몰의 3배를 자랑한다고 했다. 미국에는 이른바 '몰 컬쳐'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한국에도 그런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중국에 쇼핑몰을 500개나 짓는다는 계획은 정신나간 짓이고 미친 짓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작문을 가르쳐온 그는 "미국 학생들이 개방적이라기보다 폐쇄적인 마음자세를 갖고 있었다"면서 "사회가 근대화하면서 정신세계도 변화했는데, 사람들이 근대화로 인한 세뇌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그 위험성도 모르는 것 같다. 전제적인 세뇌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학생들을 보면 기껏 20세기 현대문학이나 시작품, 그것도 미국작품들만 안다. 이런 식으로 사고가 고립된 것이 미국인이 직면한 큰 위험요소다. 이런 미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외국시를 소개하거나 외국문학을 모르더라도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고 개방적인 사고를 하도록 노력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이나 한국도 미국과 같은 운명을 나누게 되면 어쩌나, 미국인들처럼 고립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면서 "무엇보다 연예오락산업이 판을 쳐서 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다음은 베이다오와 일문일답.
--베이다오라는 필명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본명은 자오전카이(趙振開)이다. 필명은 친구가 지어준 것이다. '오늘'이라는 간행물을 창간한 친구가 지어준 것이다. 망커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이 때문에 영어의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내 이름은 무작위로 불린 것이다.
일본 도쿄에서 '오늘' 창간 20주년 기념식을 열었을 때 기자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필명을 지어준 망커에게 마이크를 넘겼더니 '북쪽지방 바다에 있는 침묵의 섬'이라고 설명했다.
'오늘'이라는 간행물은 1949년 공산정권 집권 이후 중국에서 최초로 발간된 비공식적 문학잡지다. 1978년 12월 23일 창간호를 낸 뒤 2년 간 출간됐다. 1980년 경찰의 저지로 강제 폐간됐다.
문학비평가들은 '오늘'에 대해 현대 중국문학에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잡지로 평가한다. 사회내에서 허용되던 공식적 담론에 도전장을 내민 이 잡지는 19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영향력이 컸다. 중국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적 간행물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중국작가들이 '오늘'을 복간해 지금까지 60호가 나왔다. 계간지로 15년 간 발행되고 있다.
발행부수는 한정됐지만 중국 작가들로 하여금 이데올로기 통제에서 벗어나고 상업주의라는 이중압력에 벗어나게 하는 하나의 장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국을 떠나 망명했던 상황을 말해 달라. 톈안먼 사건 이후 중국을 보는 시각은 어떤가.
▲인권운동을 계기로 망명했다. 중국 지식인들과 함께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서명운동을 했다. 톈안먼 사건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일이다. 우연히 이 일을 겪은 뒤 망명을 떠났다. 그 뒤 톈안먼 사태가 났는데 그렇게 크게 날지 몰랐다.
나는 톈안먼 사건을 베를린에서 들었다. 시위대가 내 시를 인용했다는 얘기를 듣고 옳지 않다,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했다. 글 쓴 의도와 무관하게 인용됐고, 실제 그 사건이 있을 때 나는 현장에 없어 죄의식을 느꼈다.
전 부인과 당시 네 살이던 딸과 6년 간 떨어져 살다 1995년 캘리포니아에서 재회해 미국에 정착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사회에 굉장히 큰 변화가 왔다. 덩샤오핑이 중국의 경제개혁을 위해 남쪽 지역에서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중국에 자본주의 물결이 일고 있으나 아직은 이념 통제가 있다. 몇년은 더 지나야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중국의 경제상황은 과도기적인 것으로 본다.
전반적으로 중국경제가 고속성장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국민의 삶이 20-30년전과 비교했을 때 놀랄 정도로 개선됐다. 물론 이면에는 그 나름의 위기가 있다. 중국이 경제적 부를 누리기 위해 치른 대가는 크다. 소득격차와 빈부격차 커지고, 천연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오염이 심화했다. 중국을 해안과 내륙지방으로 나눠 볼 때 해안은 부유하고, 북서쪽 농민들은 굉장히 가난하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분단이 중국에 존재한다. 이런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새로 출범한 정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어떻게 보나.
▲중국과 한국 국민은 일본의 우경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양국은 2차 대전 때 일본 피해국이기 때문이다. 과거사는 일본 정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전범에 대해 부인하고, 침략사실을 모호하게 만들고 의미를 희석하는 행동들은 올바르지 않다. 떳떳하게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문학포럼에 참가한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일본인의 심리상태를 꼬집어 표현한 말이 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일본에서 (오에 겐자부로 같은) 그런 지식인들과 언론의 목소리가 약해진 것이 안타깝다. 정부에 대한 비판기능을 회복해 목소리를 다시 높여야 한다. 민족주의가 때로 좋을 때도 있다. 약소국은 국민의 힘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국가의 힘이 커지면 민족주의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유럽연합이 만들어진 것이 인류번영에 기여하리라고 본다. 아시아 대륙도 비슷한 연대를 해서 유럽방식을 따르면 진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일본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본이 자세를 바꿔 전범에 대해 용서받고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직시하는 자세를 보일 때 아시아 내에서 연대가 가능하다고 본다.
--가장 좋아하는 시작품은 어떤 것인가. 어떤 시를 지향하나. 시를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좋아하는 시는 아직 못 썼다. 모든 시인이 그럴 것이다. 다음에 쓰게 될 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시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예와 아니오라는 대답을 모두 할 수 있다. 시는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시는 우리의 영혼을 심도 있게 건드리기 때문에 변화를 시킬 수도 있다.
시는 인류의 고통을 노래한다. 본질적으로 시라는 장르는 어두운 구석을 갖고 있다. 어두운 구석을 찾아내는 과정이 시에 담겨 있는 것이다. 시는 어둠 속에서 인간이 꾸는 상상 속의 깊은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톈안먼 사건에서 자신의 시가 인용된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한 의미는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서 시를 쓴 나는 자리에 없었다. 그 시에서 격려받고 그 정신에 도취되면 위험한 상황으로 가게 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다는 의미다. 시는 원래 그런 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 선전선동용으로 사용돼서는 안된다. 개인 차원에서 세계관을 담아내는 것이 시다.
사건 이후 내 작품을 돌아봤다. 내가 그런 혁명기운이 감돌던 시대를 살았기에, 또 그런 분이기에서 혁명시를 읽으며 자랐기에 초기작에 그런 정신이 반영된 것 같다. 그런 의미가 있으면 선전선동에 사용된다. 시가 인용된 상황은 복잡하다. 이후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혁명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ckch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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