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이혼 보고
감동 |
2005-05-26 03:23:20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눈물까지 흘렸슴니다,이 글 보고 욕지걸하는 사람 정말 인간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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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엄마!!!
엄마야 엄마 지금은 어느곳에 있나?......
울엄만 지금 어느곳에 있는지?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없는 울엄마... ...
10년전... ...
저에게는 부유하지는 못했지만 행복한 집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아버지.어머니 나와어린남동생 하나아주 단란한 가정이였죠.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는 우리가정에도 찾아 들었습니다.
아버지,어머니는 파산의 변두리에 들어선 직장에서 주는 로임으로는
가정을 꾸려가기가 힘들었습니다.하여 다른 사람들처럼 잘 살아보려고
한국행을 선택하였습니다.헌데 한국행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여보세요 가짜결혼을 한다면한국으로 가기가 쉽대요...돈도 적게 들고>
어머님은 하루 아버지와 이렇게 상의 하더니
몇일간의 고민과 상의를 거쳐 그 길을 택하기로 하고
아버지와 어머님은 리혼 수속을 하였습니다.
어머님은 다른 사람의 소개로 한 한국사람과 계약을 맷고
가짜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떠나게 되였습니다.
연길공항에서 어머님은
<여보세요 제가 한국가서 돈을 벌어 보낼테니 당신도 한국으로 나오세요>
<함께 돈을 벌어 앞으로 잘살아 보자요...>
아버지께서는 <여보 당신도 한국으로
가거들랑 몸 조심하오 앓치 않도록 말이오.
건강해야 행복하지 집 근심은 하지말고 내가 있으니 ...>
<여보세요 당신은 심장도 좋치못하고 관절도 좋치못하니
제가 없는 동안 저절로라도 몸조리 잘하세요
밤에 삼륜차를 끄는 일은 인젠 그만두세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렇게 서로의 마지막 사랑의 말씀을 주고받았습니다.
나와 어린 동생은 멀리 떠나는 어머니가 마음 상하지않게 해드리려고
다짐은 하였지만 어머니가 정말로 우리곁을 떠나
멀리 타향으로 가신다니 눈물만 흘러 나왔습니다.
1994년 3월 10일
우르릉 우르릉
비행기의 엔진소리와 함께 어머니는
우리를 남겨두고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날밤 아버지는 우리를 불러놓고
<영희야 철이야 너희둘은 공부를 잘하여
어머님께서 돌아오시면 기쁨게 해드려야 한다.
학자금은 이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라도 벌어댈터니
공부에만 모든 정력을 부어라...알겠지?>
어린 동생은 그래도 어머니가 보고파 눈물을 닦으며 물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는 언제면 돌아오시는가요?
응..응 난 어머니가 보고픈데...>
밤이면 동생은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싶어
온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가족사진만
뚫어지게 바라보군 했어요.
이때는 제가 13살 동생은 10살이 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의 행복이 파탄되는 날인줄 누가 알았으랴?
아버지는 그 해가을 직장이 파산되여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하여 우리둘의 학자금과 생활비를 마련하시느라고
밤낮없이 삼륜차를 끌었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시면 깊은 밤 우리가 폭잠든 후에야 들어 오셨습니다.
어떤날엔 아버지께서 일찍이 나가시고 늦게 들어오시기에 나와 동생은
아버지의 얼굴조차 볼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은 빨리도 흘렀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가고
헌데 한국으로가신 어머니한테서는 종무소식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찌하여 소식없어요? >
<아직 일자리를 잘 잡지 못하였는가보다... ...
어머니는 일자리도 잡아야하고 월세방도 얻어야하니 아마 바빠서 그럴거다...>
아버지는 말씀은 이렇게 하시면서도
얼굴엔 그늘이 비꼈슴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2년 3년 4년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어머니는 감감무소식이였습니다.
그간 할머니는 년로하신 몸에 갑자기 중풍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되자 집안의 모든일은 아버지께서 혼자 감당해야만 하였습니다.
어느 하루 아버지는 일찍히 돌아오셨는데 매우초라해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도 힘겨운 몸으로 저희들의 밥을 지어놓고
<...얘 영희야 너 김치를 썰어서 철이와 함께 밥먹어라... >
하시고는 밥도 안드시고 들어 누우셨습니다.
<아버지 몸이 불편하신가요...?>
<아니 괜찬다...잠시 쉬면 곧 나을거다>
하지만 아버지는 저더러 집안일을 못하게 하셨습니다.
<너의 임무는 공부를 잘하여 꼭 대학으로 가는것뿐이다.집안 일을 하면 안돼.>
하고 딱 잘라 버렸습니다.
하루가 가고 한달이가고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삼륜차를 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신지 여러분들은 아시는지요?
<얘 영희야 이제 몇일만 더벌면 너희들의 이번학기 학자금은 마련된단다.>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가 벌어오신 돈은 아버지의
피와 땀으로 바꾸어 온것임을... ...
어린 동생도 인젠 섬이 들었는지 더는
아이스크림 먹겠다고 아버지한테 조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해마다 6.1절이면 동생과 나한테
용돈 2.00원을 손에 쥐여주곤 했습니다.
이 돈은 아버지가 짐을 두번 운반해야 버는 돈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쓸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급기야 이웃들에 도움을 청하여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갔는데... ...
이게 웬 청천병력이야... ...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만 두고 이렇게 떠나십니까?>
동생과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오직 우리곁을 지켜주시던아버지 마저 이렇게 떠나셨습니다... ...
세상에 사람이 살면 얼마를 살랴?
돈이 아무리 많았던들 무었하랴?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그 젯날의 행복이 다시찾아올런지?
어머니가 떠나신지 인젠 10년 모습조차 흐려집니다.
-머나먼 한국땅의 하늘을 바라보며
해란강의 언덕위에서 다시 한번 불러 봅니다 -
... ...엄마야 엄마!!!!
-영희-
-2004년9월28일
타향에서 이글을 보시는
어머님들이여
가짜결혼으로 한국행을 택하시는
아버지 어머님들이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고
사랑을 아끼시여라
일정송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