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한가지 더, 시모노세키 조약, 일본열도 맞을까? 대륙인가?

조선의아침  |   2005-05-20 10:54:11
우리는 력사인식에서 맨처음으로 각인되는 것이 부모에게서부터다. 그 부모는 그 부모에게서다. 그런 부모는 왜정시대에는 국민학교/소학교에서 배운데서 지식을 넓혀갔다. 이런 학교는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어/한글 보급운동이 대대적으로 이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1920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사람도 "낫놓고 ㄱ자도 모르는사람"이 수두룩했다. 일본인의 식민정책에 따라 지식의 폭은 한정되게 된 것도 모르고 배운 것이 많아 그것으로도 유식층에 들어갔다. 력사의 편식, 지식의 편식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잘못된 력사인식의 한 장면을 소개코자 한다. 다들 많이 듣고 알고 있다는 "시모노세키 조약" 말이다. 조약을 맺었던 곳이 "시모노세키"인데, 한자로는 "下關"(하관)이다. 과연 "시모노세키"가 존재했으며, "시모노세키 조약"이 1895년 3월에 과연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다들 한 때 떠들썩 했던 <대한계년사>를 보자. "淸遣大臣李鴻章 東渡乞和日本... 乙未...三月二十三日(陽曆四月二十七日) 會同 立約於馬關" [청나라에서 파견한 대신 리홍장은 동쪽으로 건너가 일본에 화친 맺기를 애걸하였다... 1895년 3월 23일(양력 4월27일)에 여러 사람이 모여 마관에서 조약을 맺었다.]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보자. 첫째, 조약의 명칭이 "마관조약(馬關條約)"이라야 하며, 그 장소는 "馬關"이라야 한다. 둘째, 그 마관조약의 주체의 하나가 청나라 리홍장이며, 그가 일본으로 가기위하여 "동쪽으로 건너갔다[東渡]"는 것인데, 그 책의 번역자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가"라고 했다. 원문에는 "바다"라는 표현은 전혀 없다. 오직 "渡"뿐이다. 이것은 "강(江)"을 건너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어디서 동쪽으로 건너갔다는 말인가? 청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벌였던 장소가 원문에 보면, "九連城/金州/旅順/文登/寧海/榮城/威海衛/劉公島" 등지다. 이곳은 하북성/절강성/강소성/산동성 지역이다. 이 지역이 일본에게 차례로 함락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약을 맺기전의 청나라와 일본의 활동지역은 바로 하북성/산동성/강소성/절강성 지역이라는 말이며, 바로 그곳에서 일본지역으로 갔다는 말이다. 이 일본지역이 어디이기에 "시모노세키"라는 말이 나오는가? 셋째, 조선력사에서나, 중화인민공화국 력사에서나 한결같이 "마관조약"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일본에서는 "시모노세키조약"이라고 한다고 하지만, 엄연히 "마관"이다. "시모노세키"는 일본렬도 남부에 있다. 그러나 "마관"은 강소성 남경시 바로 남쪽에 있다. 전자라면, 리홍장은 한반도 남쪽을 지나 바다를 건너갔다는 말이 되며, 후자라면, "양자강"을 건너갔다는 말이 된다. 자! 여기서 우리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온전한 지식이 쌓이게 된다. 전쟁이 일어난 곳이 중국대륙 동부지역 산동성/강소성/절강성 등지이니, 조약을 맺는 주체자는 바로 그 지역의 핵심지역이거나, 주변지역이어야 한다. 이것은 상식수준이다. 그렇다면 동쪽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양자강을 건너갔다는 말이 가장 이상적/상식적/논리적/객관적/합리적이다. 바로 그곳 남경(南京)이 일본의 동경(東京)이다. 그 남쪽 "마관(馬關)"을 일본인들은 "下關"으로 바꾸고 발음을 "시모노세키"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력사의 재구성에서 한반도를 조선이라고 할 때에, 일본렬도를 일본이라고 명명하면서 시모노세키를 일본렬도로 지명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시기는 확언할 수는 없지만, 1945년 8월 이전임에는 분명하고 1895년 3월 이후임에도 분명하다. 이 또한 아마도 1920년 전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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