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합시다(일반 백성들에서의 동양 삼국 근대사)
서울에서 |
2005-05-20 06:17:19
우리나라와 더불어서 중국,일본등의 근대사를 좀 더 사실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850-1900년대 조선,중국, 일본의 상황이 어떨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국제관계속에서 왕과 귀족들의 논쟁이 중요 한게 아니고, 일반 백성들의 삶과 생활이 어떨거라고 생각 하시나요?
일본은 메이지유신에 힘입어서 개방과 산업화를 지향함으로서 중세봉건국가에서 근대시민사회(물론 서구와 같은 시민혁명의 결과가 아니기때문에 불완전하기만)로 이전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일본 백성들의 삶뿐만 아니라 신분이동에 상당한 민주적변화가 있었습니다
서구열강들의 제국주의 환경에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마지막으로 참여하게 될 정도로 발전을 했습니다
그때의 조선과 청나라는 어때했습니까?
아직도 왕정의 상태에서 황제와 고관들의 폭정과 수탈이 심해서 일반 백성들은 거의 짐승과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현재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1945년 대한민국정부 수립으로부터 시작해서 민주주의와 근대화를 위해서 노력한 우리의 부모 형제들에게 있습니다.
150년전의 우리의 조상들은 현재 우리들처럼 자유와 평등 등 보편적 가치를 지닌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황제와 귀족들에 의한 수탈과 가난으로 찌들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150여년전과 같은 상황에서 살아가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그렇습니다
또한 중공이 20년전까지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60여년간 이루어낸 근대화와 민주화에 대한 업적을 직시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여기 퍼온굴이지만 역사적 인식을 정확하게 알수있는 좋은 글입니다
-----------------------------------------------------------------------------
--우리는 중국을 대국이라고 말한다. 그 나라의 넓이와, 그 인구의 많음과, 그 역사의 유구함과, 문화의 깊이를 생각할 때에 중국은 분명히 대국이다. 그러나 근대화되지 않은 중세적 대국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왕조와 군대만 대국이고 고등한 문화국일 뿐 대다수 백성의 삶은 짐승의 것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근대화란 대다수 백성의 삶의 질이 국가의 위상과 국력에 비례하여 같이 향상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야말로 근대화의 진정한 의미였다(훗날 손문의 삼민주의의 지향점이 이것이다).
일본은 개국 이전에는 중국이나 조선과 다를 바 없이 그 인민의 삶은 곤고하고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에 비로소 일본인들은 누구나 교육을 받았고, 누구나 과학적인 의료의 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그 생활의 위생적, 문화적 수준이 확실하게 향상되는 체험을 먼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국 중국은 어떠했는가? 청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 해인 1893년에 베이징에 공사로 부임한 일본의 고무라 주타로가 베이징 생활을 한 후에 글로써 남긴 것이 있다. 이 당시 메이지의 일본인들은 매사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이런 기록에 어떤 국민적 우월감이 개입되거나 정치적 목적 때문에 과장되거나 조작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고무라가 남긴 글들은 대단히 정확하고 객관적인 당시의 사정을 전해주는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고무라가 쓴 대국 중국의 수도인 북경의 모습과 그 곳에서 사는 북경시민들의 생활상을 한번 보자. 고무라는 임기 중의 북경에 대해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북경의 인구는 2백만이라고 얘기들을 하지만 그건 과장된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80만을 넘지 않는다. 호수는 10만 정도 모두가 단층집이다. 도로는 동경의 우에노 오나리미치 정도 되는 것이 두세 군데 있을 뿐이고 그나마 행상들이 길을 차지하여 대단히 좁고 궁핍하다. 도로에는 마차 길과 인도가 있는데 보수를 하지 않아서 울퉁불퉁하여 보행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노점의 주인은 가게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므로 노점상이 바로 집이나 마찬가지이고 도로는 이런 행상으로 점령되어 있다. 화장실이 별도로 없어서 모든 사람들이 도로 위에다 대소변을 본다. 분뇨 냄새가 온 도시에 코를 찔러도 숙달이 된 시민들은 태연하다. 그리고 남자나 여자나 길 위에서 용변을 보는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하수 시설이 없는 시내는 곳곳에 소변이 흘러들어 강을 이루고 웅덩이처럼 패인 곳은 오줌 호수가 되어 있어서 자칫하면 오줌 속에 빠지고 만다. 대변이 넘쳐나지 않는 이유는 대변은 서로 가져가려고 경쟁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내 곳곳에서 똥을 가지고 사람과 개가 다툰다. 누군가가 대변을 보면 개들이 다가와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바지춤을 올리는 순간 잽싸게 먹어 버린다. 그것 외에 북경에 있는 개가 먹을 음식은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동작이 느린 개는 다 먹기 전에 사람에게 쫓겨나고 만다. 대변에 욕심을 내는 것은 개뿐이 아니다. 사람들도 도쿄의 넝마주이들이 지고 다니는 것과 같은 망태기를 울러 매고 다니면서 대변을 주워 담아서 시외로 가져가 비료로 판다. 이런 상태에서 여름에 장마비가 오면 시내 전체가 분뇨의 강이 된다. 비가 그치면 바람이 부는데 천지가 어두워 질 정도이다.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하얀 벌레들이 사람을 괴롭히는데 물리면 낫고 나도 멍 같은 흉터가 남을 정도로 지독하다. 물은 수질이 나빠서 도저히 그냥은 마실 수가 없다....이하 생략."
대국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의 모습이 이러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어떠했겠는지. 그리고 동학이 궐기했던 삼남의 지방에서 인간이 어떤 생활을 했겠는지 상상해 보라. 전쟁이 차라리 희망일 때가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