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역사
디젤 |
2005-05-20 04:26:54
1974년 1월에 공포된 미얀마의 헌법은 1988년 9월 군사정권에 의하여 폐지되었고 1993년부터 초안이 새롭게 제정되고 있다. 1988년 전국적인 민주화 요구 데모에 의해 26년간 계속된 사회주의정권이 붕괴했으나 군대가 시위를 진압하면서 국가법질서회복평의회(SLORC)를 조직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1990년 의회구성을 위한 총선 결과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국민연맹(NLD)이 압승하였으나 당시 군사정부는 총선 무효를 선언하였다. 2000년 10월부터 정부와 아웅산 수지 사이에 직접 대화가 개시되어 정부가 정치범 170여 명을 석방함과 함께 NLD 지부 9곳의 활동 재개를 인정하고 있다.
1992년부터 탄쉐(Than Shwe)가 행정부의 수반인 총리를 연임하고 있으며 1997년 SLORC를 개편하여 국가평화 발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민주통일당은 군사정부에 1998년 8월까지 의회를 소집토록 요구했으나 묵살되자 독자적인 의회소집과 새 정부 구성을 선언하였다. 의회는 단원제이며, 정원은 485석이고,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그러나 현재는 의회 부재의 상태이다.
외교면으로는 비동맹중립정책을 고수하여 UN(United Nations:국제연합)과 콜롬보계획 외의 국제회의 참가를 기피하였다. 그러나 거듭되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벗어나고자 1977년 적극적인 외국원조를 받아들일 것을 결정하고 쇄국주의로부터 큰 전환을 이루었다.
<특히 중국과는 미얀마 공산당 문제로 미묘한 관계에 있으나 기본적인 선린우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1978년 1월과 11월의 중국 부총리 덩샤오핑[鄧小平]의 방문에 이어 1979년 7월 총리 카가 중국을 방문하고 1억 원(元)의 경제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였다. 9월에는 소련 등의 영향이 강해 비동맹의 이념에 어긋난다고 하여 비동맹회의에서 탈퇴하였다. 1981년 1월에는 중국 총리 자오쯔양[趙紫陽]이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1980년 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캄보디아 정책을 지지하였으며, 1997년 7월에 가입하였다. 대외적으로 군사동맹체결을 거부하고 원칙적으로 외국에 군사 기지를 제공하지 않지만 중국에 한해 대코코도를 임대하고 있다. 병역은 지원제이며 1996~1997년의 국방예산은 28억 8000달러이다. 1998년 현재 총 병력은 약 39만 명으로 함정 150척, 항공기 200여 대가 있다
(네이버에서....)
**등소평이가 놀러간거만봐도 확실히 중공의 속국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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