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임진왜란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조선의아침 |
2005-05-20 03:04:45
우리는 임진왜란을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만리장성이 조선의 장성인데, 임진왜란이 한반도에서 일어났을까요?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아마 모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최초로 누가 보고했을까요?
이미 일본에서 현소를 보내어 통신사를 보내야 한다고 했으니 1589년부터 됩니다. 그런데 진작 복건의 행상인 허의후(許儀後)가 명나라에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그렇게 번역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을 그렇게 번역해놓았으니, 그 글을 읽는 사람은 철석같이 그렇게 믿을 것이다.
먼저 원문을 보고 번역해보자.
원문: 中朝先因許儀後 亦聞倭謀 今我國要結暹羅琉球等國合兵 征剿<宣祖實錄>卷27 선조25년 6월 갑인(26일).
번역: 조선의 중앙조정(中朝)에서는 먼저 허의후(許儀後)를 통하여 역시 왜적의 음모를 듣고는 우리나라로 하여금 섬라暹羅(태국), 류구琉球(대만) 등의 나라와 결합하여 군사들을 합쳐 일본을 정벌하여 무지르도록 하였다.(1592년 6월 26일)
여기에서 원문엔 "中朝"라고 하였다. 이것이 "명나라"라고 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 그리고 명나라라고 하지도 않았다. (中朝중조, 라고 하는것은 중앙조정..즉 조선의 중앙조정을 의미한다. 현재 국사책을 만드는 식민학자들은 이것을 명나라 로 번역한다.)
이 말이 "조선의 중앙조정"으로 번역되는 까닭은 1달 뒤에 나오는 사료로써 알 수 있다.
원문: 斗壽曰 頃見許儀後文報 必欲犯遼.
上曰 犯遼則遼東兵馬其能禦之乎.
斗壽曰 此則臣未知之. <선조실록>권27 선조25년 7월 병술(29일).
번역 : 윤두수가 "지난번에 허의후의 보고를 보았더니, 기필코 (왜적이) 료동을 침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고 아뢰었다.
임금이 "료동을 침범하면 료동의 병마사가 막아낼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윤두수는 "그것은 제가 모르겠습니다."고 답했다.(1592년 7월 29일)
1592년 7월29일이면 선조 일행이 의주에 피난을 가 있는 시기이다. 의주에 있는데, 말하는 모습은 료동이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선조는 의주에 있으면서 료동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병마사가 있으니 막아낼 수 있겠는가? 하고 물은 것이다. 그곳이 명나라 땅이라면 이런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조선이 한반도일 경우, 왜적이 료동을 쳐들어간다는 생각을 했다면 선조일행은 벌써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 지경에 들어갔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료동엔 조용하다. 사실은 이 시기에 평안도(=녕하성) 의주에는 발배의 반란군으로 시끄러웠다. 리여송이 이곳에서 9월말까지 토벌작전에 임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평양(섬서성 호경)으로 피땀을 흘리며 달려가 평양성전투를 벌인다. 이것을 한반도의 평양으로 푼다면 지리적으로 리여송 군대가 이동하여 12월에 도달할 수 없다.
의주에 있으면서 오히려 료동을 걱정하는 것은 중국대륙을 의미한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정보를 보고받은 것은 조선의 중앙조정인 중조(中朝)였고, 그래서 윤두수가 그 허의후의 정보를 보고받았던 것이다.
결코 "中朝"가 "명나라"로 번역될 수 없다. 명나라는 조선의 서쪽에 있었던 제후국이었다. 물론 조선은 중국대륙 자체이며, 수도 서울은 섬서성 장안이다.(여담..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말 중에 " 장안의 화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나 이슈로 떠오르는...당시 중심지역에서 얘기거리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를 일컬음이지요...장안은 조선의 수도였으며 그 거대한 중심지에서 화제가 된 얘기라면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