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여직원 조화리(모처럼 본 훈훈한 이야기.)

날아라병아리  |   2005-05-13 22:08:17
바야흐로 봄이 절정을 맞고 있습니다. 가히 아무 나무나 아무데서나 꽃이 지천입니다. 겨울 동안 보잘 것 없던 풀들이나 나무조차도 제 나름의 색상을 내며 꽃을 피워 냅니다. 사실 우리는 무심코 지나가지만 나무나 풀 입장에서는 꽃을 피우는 것은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일입니다. 따라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가 되지요. 가령 우리가 사무실에서 두고 보는 춘란의 경우 처음 가져다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곧잘 꽃도 피우다가 몇 년이 지나면 꽃대를 올리지 못하지요? 만약 책상 위의 춘란이 꽃대를 올리면 약 일주일 정도 꽃과 향기를 완상하다가 빨리 꽃대를 잘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사무실 여직원 조화리 이야기를 하려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새었네요. 그녀는 순수 한족입니다. 농장이니까 사무실에서 할 일이란 전화받고, 누가 꽃 사러 오면 팔고, 전화로 주문받고, 돈 관리하고 뭐 그런 일이지요. 아참, 장부 정리도 하고요. 막상 적어 보니까 그래도 하는 일이 꽤 많네요. 요즈음에는 세관이다, 은행이다 좇아 다니면서 수출업무를 같이 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화받고, 꽃 판돈 들어 오면 통장에 넣어 두고, 차 심부름하고 그런 일을 했는데요. 농장이다 보니까 꽃을 소매로도 파는 경우가 있고 또 중간 상인들이 와서 도매로 팔기도 하는데 이게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도매 상인들이나 원거리 거래처들 혹은 수출작업이야 워낙 업 무량이 많아 어짜피 우리가 따로 시간을 내어 여러 직원들이 달라 붙어 꽃을 포장하여 보내 주면 되는데 인근 중도매 상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꽃을 사러 옵니다. 그러면 사실 좀 귀찮지요.   기껏(아이구, 배부른 소리하네요.) 몇 백원 어치 꽃을 사면서 여직원을 데리고 근 두, 세시간을 여기 저기 밭을 돌아 다니면서 고르면서 시간을 물 쓰듯 합니다. 기껏 뽑아 놓고는 마음에 안든다고 그냥 내 팽게치 기도 합니다. 또 값을 깎자고 떼 쓰고, 점심 시간이든 퇴근시간이든 아무 때고 와서 살려고 하니 한참 바쁠 때는 "아이고 돈이고 뭐고 다 싫다. 이 넘들아. 안 판다 안 팔아." 이런 배부른 투정도 속으로 해 봅니다.   처음에는 우리 화리가 많이 상인들과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더니 이제는 제법 능글맞아 져서 때로는 씩씩 웃으며 팔기도 하지요. 태도가 심히 나쁜 몇몇 상인은 조화리에게서 출임금지를 당하기도 했고요. 저야 멀뚱이 앉아서 화리야 꽃 사러 왔다 하면 그만이지요. 몇 시간을 시달리고 와서 그래도 한 이천원어치라도 팔면 우리 화리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데 기껏 몇 백원 밖에 못 팔면 시무룩해져서 사실 제가 화리 눈치를 봅니다. 혹 이 녀석이 더 이상 꽃 못 팔겠어요. 하면 어쩌나 하고요. 그래도 속으로야 싫겠지만 그래도 담담히 또 손님이 오면 나가서 팔지요. 제가 미국에서 천신만고 끝에 물건을 좀 팔아 중국 농장으로 돈을 송금해 주면 우리 화리가 제일 좋아 하더라나요.   그래도 농장 사무실 근무라는게 뭐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고 일이 매일 많이 일어 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특별히 일이 없으면 개인적인 공부를 좀 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회계책 펴 놓고 따로 회계 공 부를 해도 그저 못 본체 합니다. 그녀의 또 다른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통역입니다. 그런데 이 통역이 좀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한족이니까요. 애초에 우리는 사무실 근무 여직원으로서 우리 교포 처녀들을 데려다 근무를 시켰지요. 그런데 농장의 위치가 어짜피 시골이다 보니 교포 처녀들이 업무 시간 종료 후 딱히 갈 데가 없는 거지요. 소위 인터테이먼트가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보통 1년을 못 버티고 그만 두고 나가고는 했지요. 심지어는 불과 몇 달만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 사무직 이란 것이 있으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막상 사람이 없으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또 가끔 이웃 한국인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금전사고가 나기도 하였고요. 대개는 교포 (대단히 죄송합니다. 어디서나 선인과 악인은 공존하니까요.)가 사고를 치지요.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하듯 사무실 여직원에게 통장과 도장과 장부들을 대개 맡기지요. 이게 문제예요. 우리는 이 문제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지요. 어짜피 사무실 여직원을 쓰고 그녀에게 자금관리를 맡겨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그래 현지인을 쓰자. 현지인들은 금전사고가 날 확율이 비교적 적다. 왜냐햐면 혹 나쁜 마음을 먹다가도 현지 에 부모형제가 있기 때문에 자기로 인해 주위 친척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다. 뭐 이런 사고 방식 때문에 비교적 금전사고를 치지 않는다는거지요. 그리고 통역 문제야 어짜피 우리가 중국에 사업을 하러 왔으니 중국말을 좀 배워 의사소통을 하고 여직원에게도 또 한국어를 좀 더 가르치고... 뭐 이렇게 생각했지요. 궁리 끝에 인근에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약 2 년 정도 배운 학생들이 있다는 겁니다. 어느 선교사 님이 무료 로 운영하는 곳에서 과외로 배운 것이지요. 그 선교사 님에게서 한 사람을 소개 받았는데 그녀가 바로 조화리 라는 여직원입니다. 막 피어나는 20살 정도에 데려 왔는데 이제는 20대 후반이 되었네요. 그녀는 회사 초창기부터 같이 있어서 거의 식구와 같아요. 한참 회사가 어려웠을 때에는 그녀 통장에 급여로 모아 놓았던 돈까지 도로 꺼내 썼을 정도니까요. 제가 미국에서 한참 고전할 때 가끔 중국 농장으로 전화를 하면 홍수때부터 교통사고 때까지 또 그 이후로 도 무척 고생하던 많은 생산직 한족 여직원들이 다른 데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그럴 때마다 사실 저는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고생만 하다가 회사가 피어 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나가게 되어서, 경영자 입장에서  미안하기도 하고 괴 롭기도 하고는 했지요. 회사 형편만 돌아가면 그동안 고생했던 사람들에게 한국 관광이라도 한번씩 시켜 주어야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데 말이지요. 아니면 시집갈 때 봉투라도 좀 두둑히 주어야지 하고 말이지요. 그렇게 전화를 할 때마다 정들었던 직원들이 하나씩 둘씩 그만 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었지요. 그 당시는 급여가 몇 개월씩 밀려 있었으니까, 나가겠다고 하면 사실 말릴 염치도 없었고요.   그런데 제가 전화를 하면 대개는 조화리가 받지요. 그러면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 이 친구는 아직 있구나. 그래서 화리야, 고맙다. 네 목소리를 들으니 무척 기쁘고 힘이 난다. 그렇게 말해 주고는 했지요. 간혹 다른 사람이 받으면 꼭 화리 안부를 물었어요. 그 애는 아직 있냐? 이렇게요. 이 의리의 처녀 조화리는 오늘도 늠름하게 사무실을 지킵니다. 가끔 저와 통화를 하면, 저는 중국어로 그녀는 한국어로 통화해요. 그러고는 서로 웃지요. 딸처럼 예뻐요. 우리 화리가요. 남자 친구는 있는 눈치인데요. 혹 이 친구 시집가면 회사 그만 둘까 봐 좀 걱정이 돼요.  의리의 산동인 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이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봐요. 이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저는 너무 복 받은 사람이지요? 여러분들은 물론 저보다 더 좋은 분들을 많이 거느리고 계시지요? 좋은 봄날 평안하세요.     샬롬! 퍼온글입니다. 어디서 퍼온지는 안적을려구요. 모처럼 좋은글 많이 올라와 있는 사이트에 또 조선족 분들 가서.. 이상하게 물흐려질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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