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을 위한 변명
혼돈 |
2005-05-10 02:51:29
조선족을 너무 모르는 한국인들을 위해 이렇게 한마디 적겠다.
저의 할아버지는 경북 안동 와룡면 가구동 사람이었다.18세에 할머니를 데리고 만주로 이주 했고 만주에 정착 했다.
중국의 토지혁명시에 할아버지는 부농으로 신분 확정 되었다.같은 조선족 사이,같은 마을에서 온 사람들 끼리,한국을 떠나오기전에 한국에서의 신분을 신고 한 것이었다.할아버지는 안동에 약간의 토지가 있었다고 하나 그 사실여부에 대해선 잘 모른다.그냥 서로간의 신고로 할아버지는 부농 신분이 되었을 뿐이다.
부농신분이어서 할아버지는 문화대혁명시기에 타도도 많이 받았었다.또 할아버지의 6형제중 3남매는 한국에 남아 있었기에 드문드문 편지가 날아오면 간첩이란 혐의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러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자랐다.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언간 십여년간 아버지는 공산당에 가입하시려고 무진 애를 썼다.할아버지의 부농이란 신분 때문에 아버지는 십여년간의 고생끝에 겨우겨우 공산당에 가입 할수가 있었다.십년이란 시간을......
일년전에 아버지가 미국에 오셨다.한담을 하다가 아버지의 옛이야기가 나오기에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 경위를 물어 보았다.아버지의 대답은 간단 하셨다.
너희들을 위해서 가입할수 밖에 없었다!!!
부농자식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는 것이 몹시몹시 괴로웠던 그 세월.....
아버지는 그 꼬리표를 우리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그 꼬리표를 달고 산다는 괴로움을 맛보실대로 맛보신 그 혼돈의 세월속에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해줄수 있는 유일한 우산이 입당,입당 이었다.
이제는 아버지도 명색만 공산당원....
한달에 자동적으로 1원의 당비만 빠져나간다.
탈당에 대해서도 여쭈어 보았다.아버지는......
관둬라!언제 정풍운동이 올지,언제 문화대혁명이 올지,누구도 모르는 판에 보호산 하나는 그대로 있어야 너 동생들이라도 중국에서 해를 입지 않을 것 아니냐?
혼돈속의 세월속에서 살아 남으려는 유일한 수단......
난 민족도 국가도 싫다....
그냥 혼돈이 없는 세월속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은 마음 뿐이다.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혼돈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오고 살아남은 조선족의 모습을 보고 느낀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