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한국분이 조선족에 대해 쓴 글 (퍼온글)

나원  |   2005-04-30 16:38:38
인내력 지구력 자신없는 분들은 절대 스크롤 금지 !!! 디아스포라 (diaspora)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 세계에서 유대인들의 흩어짐을 표현할때 많이 사용하는 단어 이지만, 원래는 그리스어인 dia (떨어지다) 와 spora (흩어지다) 라는 말의 합성어 입니다. 그리고 원래 이말은 땅이 척박한 이유로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수 없었던 그리이스 민족이 자중해 여기저기로 흩어져서 도시를 세우고 상업에 종사하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 였습니다. 그렇게 흩어진 그리이스인들이 세운 도시가 아직도 유럽에는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세운후 아직도 남아 있는 대표적인 도시들이 바로 프랑스의 마르세유, 이태리의 시라쿠사, 메시나 그리고 타란토 입니다. 그런데 어느때 부터인가 이 '디아스포라' 라는 말이 유대인들의 박해와 흩어짐을 표현하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흩어진건 종교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외교력과 정치력이 꽝이었던 그들 탓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지 하나의 민족이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진다는건 그 민족에게는 비극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세기에 들어와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의 기치를 내걸고 그들 자신의 옛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지금까지 주변 아랍국들과 적과의 동침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던중 1975년에 이스라엘 국민들은 그들에게  너무도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바로 이디오피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 후손들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이디오피아인 들과 혼혈을 거듭하게 되어 외모가 아프리카 흑인으로 변해 버렸지만, 유대인이 가장 유대인일수 있는 종교를 버리지 않은채 고난의 삶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존재를 확인한 이스라엘 정부는 군사 작전을 즉시 시행하고 1980년부터 1990년 사이, 그들을 모두 이스라엘로 데리고 옵니다. 그들을 맞이한 유대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귀환을 환영했으며, 새까만 흑인 유대인들 또한 그들의 조상이 살다가 쫒겨난 옛땅에 돌아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떨어져 살다가 고향에 귀환 했으니 무리도 아닐겁니다. 그런데 장작 중요한건, 그들의 존재가 밝혀지고 자그마치 거의 10만명에 가까운 새로운 사람들을 옛고향으로 데리고 오는데 이스라엘 국민들 사이에서 아무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의 조선족 백만을 한국에 모두 데리고 오면 한국에 사시는 분들 또한 모두 기뻐할 거라고요 ? 무슨 그리 심한 농담을.... 하시나.....) 물론 인구가 많지 않은 이스라엘이니 그런 귀향을 환영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건, 피부색이 다르고 겪은 고난의 과정이 달랐던 , 자신들과 뿌리를 함께하는 동족이 돌아온다는 기쁨에 , 자신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무리가 따를텐데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흑인유대인들의 귀향을 환영하고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요즘 들리는 소식으로는 , 그렇게 귀향한 흑인유대인들이 지금은 동족들로부터 차별도 받고, 또 다른 유대인들 보다 가난하게 살고 있다 하더군요. 이제는 같은 땅에 살아가고 20년 넘게 섞여있다 보니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자신들이 차별받던 예전의 세월은 잊어버리고,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살던 티를 내느라 동족인데도 피부색으로 차별하고 있는걸 겁니다. 게다가 근대문명국이라고는 할수 없었던 이디오피아에서 오랜시간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왔으니 현대적인 이스라엘인 입장에서는 촌티가 팍팍 흐르게 보일수도 있었을 테고 말입니다. 헌데 짚고 넘어가야 할건, 그렇게 인종차별적인 행태를 보이고는 있다지만, 그 아무도 그들이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말한다거나 그땅에서 쫓아낼 생각은 전혀 안한다는 점이죠. 같은 민족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전라도 경상도 사이 안좋은 한국처럼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는 거지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거나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한국도 디아스포라를 경험한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중국의 오지로 끌려간 고구려 백성들이 있었고, 또한 그렇게 끌려간 백제의 백성들이 있었으며  발해가 망한후에 흩어진 발해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몽고가 침략했을 당시에 몽고나 중국으로 끌려간 백성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단지 다른게 있다면 유대인들과는 달리 , 그렇게 오래전에 흩어진 한민족들은 다른 민족과 융화가 되어버려 한민족이라 할수 있는 증거를 상실했다는 것일 겁니다. 가장 근세에 겪은일로는 일제시대의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 눌러 앉아 살게된 제일교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유가 조금 다르지만 중국에 살고 있는 , 조선족이라 불리우는 한국인들이 있죠. 이들 조선족들은 무척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한민족 입니다. 게중에 적지 않은 이들은 살기 어려워 가족끼리 남부여대하고 만주나 중국으로 이사를 갔는지라 남아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또 그중 많은 이들은 한반도에 남아 일본의 압제에 살기는 싫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싸우러 만주로 넘어간 사람들입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많은 사람들의 자손들이 아직도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광복군이나 독립군들의 후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런데 이념으로 남북이 갈리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그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중국에 남겨집니다. 독립군이나 광복군으로 활동한 사람들 중에는,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공산계열의 독립단체에서 활동하신 분들도 있고,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는데 도착한 곳이 마침 북한이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북한군에 몸담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동란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이 월등히 높았던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독립군 출신 장교나 사병들이 주축이 되어 군대를 조직했기 때문에 그들의 실전경험으로  전투력이 높았었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공산화된 중국에 남겨진 그들은 조선족 자치구라는 곳에 모여 살게되었고 자신의 결정이었던 아니었던간에 중국인으로서의 국적을 취득하게 되어 중국인이지만 조선족으로 분류되어 중국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중 하나가 되어 삶을 영위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더 흘러, 한국에게 중국이었던 대만은 대만이 되고 , 중공은 중국이 되는 날이 옵니다. 그러자 갑자기 중국에 사는 조선인들의 존재가 한국민들에게 전해지고 마찬가지로 같은 핏줄이라는 동질감에 대한 감격으로 인해  그들의 존재가 각광받는 때가 옵니다. 그동안 중국의 작은동생 노릇하던 북한애덜이 가르쳐주는 말을 배우다 보니 특유의 한국어를 구성하게 되어 그 사투리의 신선함에 연변사투리 시리즈와 같은 코메디의 소재도 제공하고, 또 인력이 모자른 산업분야에 비교적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력풀(pool)의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임금이 왜 본토 한국인들 보다 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절대 이해 못합니다만....) 그런데, 한순간의 감격적인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그동안 서로가 살아온 환경의 차이로 인한 시각의 차이가 들어나기 시작하면서 부터 중국의 조선족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도, 한국을 바라보는 조선족들의 시각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동포이니 자신들을 도와주고 감싸줄거라는 기대로 한국을 찾은 조선족들에게 개인주의적 군상들로 변한 한국인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고, 그들의 중국인 국적으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 취급을 당한다거나. 같은 동포니까 믿었다가 사기를 당해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거나, 산업체에서 근무하다 몸에 큰 부상을 당해 일도 못할 지경이 되었는데 나 몰라라  정부나 회사로 부터 냉대를 당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족들은 한국에 대해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분노까지 느끼게 됩니다. 허나 한국에서는 다른 이유로 인해 조선족들에 대한 반감이 일어납니다. 한국사회의 시각으로 보면 분명히 조선족들의 행동이나 생활태도는 촌티 그 자체였을 겁니다. 게다가 그 이상한 말투하며 무언가 자신들을 도와줬으면 하는 애처러운 눈빛의 부담감 하며, 더더구나 월드컵 당시 중국언론이 보여줬던 반한적인 정서에 동북공정 당시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려 하는 중국정부를 비판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인터넷에서 한국인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져대는 조선족들에게, 화끈한 사이버 세상의 젊은이들은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인터넷 세상의 여기저기서 조선족 대표와 한국대표들 간의 피튀기는 설전이 오가고, ' 중국에서 때넘들하고 잘 살아라! ' 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돌게 되는 현실이 찾아 옵니다. 한국의 인터넷 세상이 분노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자칭 연변조선족이라는 사람들이 같은 한민족 운운하면서도 막상 필요한 순간에 한국편은 안들고 중국정부 편만 든다는 거죠. 그리고 간간히 조선족이 북한을 도와 남한에서 온 사람들을 납치하는데 일조 했다거나 뭐 탈북자들을 북한에 돈을 받고 넘기는 그런 반민족적인 행위(북한은 다른 민족 ?)를 하기에 도저히 같은 한민족으로 받아들여 줄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선족 입장에서는 기껏 고향이라고 조상땅이라고 반가움에 찾아 갔더니 말투 이상하다고 놀리고, 싼임금에 열라 부려먹고는 임금도 안주고 때어먹지 않나, 같은 동포라면서 외국인 취급하며 단속한답시고 쫓아내고, 돌아가는 사정 모른다고 동포에게 사기치고 도망가는 한국인들이 좋게 보이면 비정상이죠. 근데, 이거 완젼히 돌대가리들의 전쟁입니다. 우선 조선족이라고 그들을 지칭하는 한국인들의 시각이 못됐습니다. 러시아에 사는 동포는 러시아 한인 내지는 러시아 동포라 부르고, 미국에 살면 재미교포, 일본에 사는데 민단계면 제일 교포, 조총련계면 제일조선인 , 독일에 살면 독일교포라 부르면서, 유독 중국에 사는 동포들에게는 조선족이라는, 중국인들이 부르는 소수민족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런거 부터 차별입니다. 좀 잘 사는 나라에 산다 싶으면 교포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곳에 사는 동포들은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발상이 차별이라는 겁니다. 차별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는 더 나은줄 아는 자만심이죠. 게다가, 중국에서 중국인 국적으로 살아갈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한국인으로 한국편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정부의 편을 드는걸 보니 니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라고 매도하는건 정말 생각이 모자른 사람들이나 할 말입니다. 그들은 50년 넘게 중국땅에 뿌리내린 사람들이고 중국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삶을 영위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고향은 한국일 지언정, 자신들이 충성을 바쳐 봉사해야 할곳은 고향이 아니라 자신들이 국민으로 속해 살아가야 하는 중국입니다. 이해를 못하시겠다 ? 로버트 할리. 이 경상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미국출신 변호사는 한국국적을 취득해서 이젠 한국인으로 살고 있고 그가 한국인 부인과 낳은 자식들 또한  한국인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영도 하(河)씨의 시조 미스터 할리가 한국인이 되었던 순간, 그는 방송국의 취재까지 받으면서 한국인이 된걸 축하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한국에서 살고 있고, '울랄라 아줌마' 이다도시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인 아내로 티비 프로그램까지 자주 출연하며 삽니다 . 헌데, 한번 가정해 봅시다. 만약 영도 하씨의 시조 하선생이 어느날 갑자기 미국편을 들고 일어나서 부시는 정의의 사도이고 그가 말한 악의축 운운은 만고의 가치이며 장갑차에 치어죽은 여중생들은 불쌍하기는 하지만 미국이 큰 잘못을 저지른건 아니다 왜 자꾸 미국을 갈구니 ? 라는 말을 했을때, 과연 몇사람의 한국인들이 그를 용서할거 같은가요 ? 그가 이제 한국인으로 사는 이상 그를 용서할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보나마나 " 그 잘난 네 나라 미국으로 돌아가라 !" 라고 외치며 흥분할 사람 많을 겁니다. 그리고 울라라 이다도시가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은 모두 미개인이라면서 못생긴 프랑스 여배우편을 들며 한국을 비하하면 모두들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 스티브유인지 스토브유인지 하는 가수가 미국시민권을 취득하니까 벌때처럼 들고 일어나서 난리를 지기던 한국인들의 특성상, 하선생과 울라라 아줌마를 이해해줄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족은 무조건 한국편을 들어야 한다고 ? 자기들 고향이니까 ? 그런식으로 따진다면 북한이 고향인 조선족들은 북한편을 들어도 할말 없어야 합니다. 북한은 아직도 중국에게는 혈맹국가니까. 히딩크가 방방뜰때 한국국적을 줘야 한다고 한때 난리가 났었습니다. 왜 ? 월드컵에서 자랑스런 4강 신화를 달성 시켜줬으니까. 얼굴도 다르고 한국말도 못하고 생각도 한국인처럼 안하고 한국음식도 제대로 못먹는데도 불구하고, 소위 한민족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게 해줬으니 당연히 한국인으로 만들어서 붙들어 두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중국의 한국동포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준 고향땅의 민요를 잊지않고 불러왔으며 비록 국적불명 이지만 한복을 지어입으며 추석과 설날을 지켜오고 전통문화를 피눈물나게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와 많은 한국인들은 그들을 이방인 취급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교포 2세나 3세가 한국에 들어와 말도 안되는 한국말을 쓰거나 아예 한국말 조차 못하고 한국식 예의에는 무지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 중에는 그들을 같은 동포라며 이해해주고 후대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후대만 하나 ? 영어 배운답시고 자기들이 나서서 영어로 대화합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태어나고 오래 살았으니 한국말을 못하는걸 이해해야 한다고 위대한 한민족의 너그러움과 대범함까지 보여주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미국이라도 방문할 일이 생기면 얼씨구나 하고 뱅기타고 날아 옵니다. 아니, 도데체 이런 이중적인 시각이 어디에 있답니까 ? 누구는 백년가까이 남의 나라 땅에서, 그것도 문화적 이질감보다 동질성이 더 많아서 동화되기 쉬운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왔고, 누구는 겨우 아버지대에 문화가 너무도 달라서 오히려 자기것을 지키기 쉬운 미국에 건너갔던가 어릴때 와서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해도 외국에서 오래 살았으니 그럴수 있다 이해되어 지는 현실이 어느나라 법입니까 ? 예전에 업무관계로 러시아의 사할린에서 잠시 머문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동포들 또한 피눈물 나는 역사를 가진 분들입니다. 당시에는 자취를 하던 관계로 어느날 시장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야했습니다. 옛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자유경제가 도입되면서 부터 일반 시민들도 자신들이 가꾼 농작물을 시장에 가지고 가서 팔수 있게 되었기에, 그곳에는 많은 러시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고, 그중에 한국인 동포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좌판을 펼치고 장사를 하는 한국인들 중에 유독 햇빛에 타서 검은 얼굴에, 이세상의 주름이란 주름은 혼자 얼굴에 다 모아놓고 사시는것 같은 할머니 한분이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야채를 팔고 있었는데, 왠지 마음이 당겨서 그 할머니에게 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에...? 러시아어로요 ? 아니 한국어로....제 러시아 말이 짧아서 대화가 전혀 안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 반색을 하며 머뭇머뭇 내 두손을 반갑게 잡고 한국말을 하시는데, 그렇게 좋아 할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이름을 말씀 드리자, 꼬깃꼬깃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종이 (기억들이나 나실까...? 누런 갱지 )와 연필을 꺼내 한글로 또박또박 제 이름을 쓰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어눌한 한국어와 억양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하신다는 말씀이, " 조선어로.... 누구 이름을 .....써보는게 ....40년만이여..." 그말을 듣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한마디에 그분이 겪어야 했던 그 모든 고난이  함축되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분이라면 생활이 넉넉치 않은 분이라는거 뻔히 아는데, 제가 일부러 사드리려던 야채 한묶음을 아예 세묶음으로 만들어 주시면서 그냥 가져가라고 하시더군요. 같은 동포를 만난 반가움 때문이었겠죠. 물론 그냥 올수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러시아 루불을 다 털어서 드리고 왔습니다. 억지로 돈을 손에 쥐어주자 계면쩍어 하시며 웃으시는 입술 사이로, 자신의 몸에서 만들어진 이빨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극심한 비타민 부족으로인해 모든 이빨을 다 잃어서 국가에서 만들어준 의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산국가에서의 의료혜택은 무료입니다. 적어도 소련연방 당시 에는 그랬죠.) 오래오래 사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 오는 길이 왜그리 서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서러움이 분노로 변했습니다. 내 조상들이 못난 바보천치들 이라서 한국인들이 이렇게 뿔불히 흩어지고 누구는 잘사는 나라에서 편하게 살고 누구는 못사는 나라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해보고 서러움이란 서러움은 다 받고 사는게 너무 불공평해서 욕이 나왔습니다. ' 스바.....대륙을 주름잡던 위대한 한민족 좋아하시네....' 그것마져도 불공평 한데 누구는 외국인인데도 불구하고 한국국적을 취득해야 마땅하고 누구는 원래 한국인인데도 외국인 취급받는건 정말 불공평 합니다. 가뜩이나 한국인이라는 원죄로 인해 타지에서 기를 펴고 못사는데, 본국에 사는 사람들과 생활환경이 달라 의식의 방식이 달라지고 사고가 달라졌다고 해서 그걸 핀잔하고 다르다 이방인 취급할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차피 같은 DNA를 몸속 어딘가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생각과 생활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국인 취급을 하는게 공평한거지 모르겠습니다. 더더구나, 대한민국이 못살곳이라서 더 잘사는 나라로 떠난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 사는 교포들도 아니고, 감옥같은 한반도에서 떠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후손들에게 그리 대하는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겁니다. 중국은 인터넷도 정부가 감시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중국에서 한국의 정치가 아니라 고향사람들이 그리워 접속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 한국편 들라 해보십시요. 가뜩이나 연변조선족이라고 백안시 하는 시류때문에 열받는데, 당국의 감시까지 신경써야 하는 조선족들 입에서 위대한 대한민국이여 중국을 깨부수고 만주를 회복하자, 위대한 고구려의 후손들이니 우리의 땅을 되찾아 세계 만방에 위대한 한국인의 우수성을 보여주자  ! 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 해외에 우편을 보내면 군바리들이 워커발로 휘어잡던 정부에서 그 편지속의 내용물을 검사하던 시절이 백년전이 아닌 바로 20년 전까지의 한국입니다. 그때 한국에 살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하고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군대에서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면 그 내용을 일일히 검사하던 때가 엊그제입니다. 물론 군대의 특성상 지금도 어느 정도는 감시를 하고 있을 겁니다. 중국사람도 감시를 받는데, 그 안에 사는 외국인이나 마찬가지인 조선족들은 감시를 안받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런분들은 무거운 머리를 어깨위에 놓고 다니실 필요 없는 분들입니다. 아니 도데체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고 외계인 취급받고 한국에서도 조선족이라서 외계인 취급 받는게 얼마나 황당한 상황입니까 ? 고향은 푸근한 곳입니다. 푸근해야 하고 언제나 돌아가면 편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말은, 받아주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더 너그러워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출해서 도시에 나가서 고생하고 도시의 생활방식을 새로 익힌 식구가 돌아와도 고향에 있는 식구들은 따스하게 맞이 합니다.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는 중국교포를 향한 그런 너그러움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중요한건, 중국에서 김치는 안먹고 탕수육만 먹던, 소주는 안마시고 빼갈만 마셔대던,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촌티가 팍팍 흐르는 국적불명의 한복을 입고 어깨춤을 추던, 그들이 그들의 고향을 잊지않고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산다는 겁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 만난적이 없어도 나를 보면 반가워 하는 누군가가 다른 땅에서 살고 있다는게 말입니다. 핏줄이란 그냥 만나면 반가운 겁니다. 제가 미국에서 만난 연변출신 조선족들은 다들 상당히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1.5세대나 2세로만 내려가도 한국어를 할줄 모르는 교포가 수두룩한데, 그렇게 오랜세월 남의 나라 땅에 살아 왔으면서도 억양은 조금 다를 망정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중국교포들에게 전 경외심마져 느껴야 했습니다. 그런 중국의 교포들에게 이제는 조금 너그러워 졌으면 좋겠습니다. 궂이 너그러워 질 것도 없습니다. 그냥 한국인으로 대해주면 됩니다.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대해주는것 보다 더 특별한 일은 없을겁니다. 어느 중국교포가 올린  글을 읽고나니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비분강개하여 해댄 횡설수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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