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포청년의 글

칭다오  |   2005-04-26 16:31:44
모이자라는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연변에사는 조선족입니다... 지금 한류가 중국전국에 퍼졌지만  한민족인 많큼  한류가 연변에 퍼진것은 거의 10년이 넘어 됩니다...  ㅎㅎ 저도 한국의 댄스가요로부터 조금씩 한국을 료해하기 시작했어요 ... 사실 그전엔 그냥 북조선 남조선으로만 알았지 한국이라는 나라는 생소했거든요 ㅎㅎ 그당시 제가 국민학교 6학년이였으니까요..... 거의 내나이또래 친구들은 거의  가요로 부터 한국이란 나라를 조금씩 료해 했다고 생각합니다.....그때가 바로 95년도~~ 제가 제일처럼 접한 한국댄스가요는  노이즈의<다 포기하지마>,터보의<검은 고양이>구피의<멉피의 법칙>(멉피인지 머피인지 잘 생각안나는군요 ^^) 시작했거든요... ㅎㅎ 첨으로 들은 우리말의 댄스가요 완전히 노래에 빠져들었죠~~ 당시에 유명했던 노이즈,룰라,클론 들로부터 한국가요계를 최고봉으로 이끌었다는 젝스키스,HOT  ^^  이들의 노래를들으면서  그들의 자료나 기사로 부터 접했어요 물론 머리스타일이나 의상까지 가수들의 흉을내며  귀에 구멍까지 뚤었죠~~^^ 머리에 물감들이고 괴상한옷에 귀걸이 까지 뚫었다고 부모한테 쫓겨나기 했으니까요 자연히 그기에 관심가니 공부하기는 싫고 매일 한다는일이 스타들의 춤을 모방한다거나 노래를 따라부르기~~  한국복장이 들어왔다면 사줄때까지 엄마와 사달라 조르고 다행히 그당시 엄마는 약국꾸리고 아빠가 사업하시다보니  그만큼 근심걱적없이 살게ㄷㅚㅆ어요~~~  그렇게 초중3년다녔고 물론 한국노래에 푹 빠져서 학습성적은  말도 이니였고 아예 고중은 포기했어요 (중국은 초등학교까지 의무교육임)  엄마,아빠는 돈을내서라도 자비(여기서 자비란 돈내고 학교가는걸말함~~ 거의 한국돈으로 200만 정도)로 고중을 가라고 권하시고 하지만 그당시까지만 공부하기가 진짜 싫었어요.. 꼭 대학가야 전도가 있는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중등전문학교에 시험을쳤거든요~~ (중국의 중등전문학교라고하면 한국의 공고보다는 조금수준이 높고 전문대보다는 수준이 낮은 그런학교에요.) ^^:그래서 간 중등전문학교~ ㅎㅎ 그학교는 외지에 있었는데 오니 완전천당에 온 기분이거군요..  상관하는 사람도 없고~~  돈은 내마음대로 막써로 뭐라고하는사람 없고  집안생활이 좋다보니 제가 한달에쓰는 소비돈은 거의 식당다니면서 알바하는 애들의 거의6배씩 썼어요(연변조선족의 부모들이 한국간 탓으로 소비가 연변한족애들보다 3~5배는 넘음  식당에서 알바하면 한달 월급이 한국돈으로 8만원 정도) 그렇게 행복하게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ㄸㅒ 나한테 불벼락이 떨어질줄이야~~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거에요 ㅜ.ㅜ  그기에 은행빚까지~~ 다행이도 아버지는 돈값이 변해도 집값은 안변한다며  사놓은 집이 많아서 그것을 다 팔고 빚을값고  엄마가 따로 약국을 하고있었기에 다행이도  먹고사는데는 근심없었어요~~  아빠사업이 망하니 세상이 여전처럼 아름답게 보이질 않더군요 학교다녀도 여전처럼 돈을못쓰고 아껴써야하고  그렇게 되니 자연히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했어요... 사업이 망하고 빈둥빈둥집에 앉아노는 아버지가 한심해보였고 아버지,나,동생을 혼자 먹여살리는 어머니가 불쌍했어요 자연히 집을오는 차수가 적어지고 집을 오기만하면 아버지와 다투고~~ 혼자일하시는 어머니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욕했죠~~ 아들한테서 그런말을 듣고 섭섭했는지 아버지 자신도 답답했는지~~ 어느날 갑자기 자기도 남들처럼 한국가겟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물론 당시에도 한국간 조선족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한국에 대한 좋은소문보다 나쁜소문이 많이 돌았고~~ 우리세식구는 아무말도 못했어요 아버지가 고집이 쎄서 한번 맘먹은일은 꼭하고야 말거든요~~~ 어머니가 울면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냥 편안하게 살자구요  약국하나로 자식 둘 대학공부까지 시킬있다구요... 하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어요... 집의 가장인 자기가 자식을 먹여살려야한다구요 그렇게 한국으로 떠난 아버지 그당시 아버지의 몸무게는 100킬로 , 더우나 근심되더군요 아버지는 중국에서 항공군관학교를 필업하고 군에서 8년복무 했지만  농촌호구라는 이유하나로 기관에 못가고 결혼 혼자 사업하시게 ㄷㅚㅆ어요  직원200명을 거느리고  사업하시던분이 그기가서 노가다일에 적응할지~~   아버지가 한국가신다음 점차적으로 돈쓰는법을 배우고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죠 아버지가 한국가기 전날 하신말씀<너는 우리집의 장남이다. 아버지가 이렇게 한국을가면 적어도 5년6년후에야 돌아올꺼다 너도 클만큼 컸으니 엄마와 동생을 잘 돌봐주고 동생한테 본보기가 되여라~~ 그리고 전문대이던 본과대에든 대학은꼭 다녀야하고~> 하지만 그동안 하지않았는지라 본과대를 못가고 2년제짜리 전문대로 갔어요 전문대를 필업하고 중국광주로 직업찾으로 갔죠~ 물론 한국회사로요~~ 사실 한국회사출근하기전까지는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않았어요 제일 큰 원인은 아버지가 한국에가서 한국인에게 욕먹으며 노가다일을 하는것이지만 제가 그때까지 연변에서 본 한국인들 별로 곱게 안봤거든요~  한국에서 택시운전수나 집이 한국농촌에나 중국을 보따리장사나 하며 한국에서 살기 궁하니 몇달노가다일을해서 돈모아서 중국에와서 하루살이하는 치들이  매일 술먹고 큰소리치고 허풍치고 주제에 조선족을 무슨 미개인을보는듯하며 다니것을 아니꼽게 봤거든요~~ 그런데 회사다니면서 느낀점 연변에서 본 한국인들과 완전히 차원이 다르더군요~~ 그때야 아버지생각이 나더군요 왜 대학을 다녀라고 했는지  대학가면 공부만 배우는것이아니라 인간성까지 배우게 돤다는것을  그렇게 다시 한국에 호감을 갖게ㄷㅚㅆ어요 그ㄸㅒ까진 중국에 한국회사가 많은줄을 알았는데 이정도일줄을 몰랐죠~~~ 한개촌에 한국회사가 70개이상되는걸  한개향에는 500여개의 한국회사가 있고 저도모르게 감탄하게 되더군요~~ 인구가5000만명도 안되는 작은나라의 회사가 대륙에 즐비하하게 서있는것보고 저도모르게 우리민족이 이렇게 대단하구나하는 자부심까지 가지게 되구요~~  제가 배운 전업이 컴퓨터이다보니 한국IT 기술을  배우고 싶더군요   그렇게 조금씩 한국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한국의 역사배경,경제,정치까지 관심갖게 됫어요 ...  이제는 중국에 관한뉴스보다 한국에 관한뉴스를 더 잘압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나오고 집으로 돌아와서 유학준비를 했죠~~ 근데 아쉽게도 아버지가 불법체류라  가기 쉽지 않더군요  그동안 3차례의 유학수속으로 집에서 1년반을 썩었어요~~ 그것땜에  한국유학을 포기했지만 한달후에 다시 광주로가서  한국회사에 출근할려구요~~  지금은 이력서를 꾸미고 면접준비를 위해 개인홈피만드는 중입니다~~ ( 아!!  여기서 할말은 아니지만 한국에 무료로 만들수있는 홈피주소있으면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엔 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왔습니다....  갈ㄸㅒ는 100킬로 넘었는데 이젠 70킬로밖에 안됩니다   그걸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걱정한다고 멜도 사진도 챗팅해도 캠도 켜지않았기에 공항에서 처음 봤거든요~~ 아버지가 온후에 변화가 제일많은것은  바로 음식~~ 지금 체격을 보존하신다며 기름있는 음식을 드시지않거든요  고기류를 거의 입에 대지않고  첨엔 우리가 습관안되서 우리가 토끼냐고 투정부렸지만  습관되니 지금은 괜찮습니다..  근데 기름이 많다고 고기를 입에대지않는 아버지가 삼겹살은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저의 글수준이 말이 아니죠? ^^  이해하세요 초중필업하고 줄곳 한족이 많은곳에서 생활하다보니  이렇게 됫어요 ㅜ.ㅜ  그러니  우리 조선족이 글못쓴다고 투정부리지마세요~ 저만 이런거니까요~~   그냥  심심해서 한번 써봤어요~~ 다른조선족도 한국이 가져다준 영향이 저와 비슷할꺼에요   여러분 행복하세요~~  서로를 비방하시지도 말구요  우리는 한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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